유머 흥미위주 가짜뉴스 어떻게 만들어질까?

by구자형 기자
2019.04.15 00:23:48

미국의 가짜뉴스 전문 매체, 위클리 월드 뉴스
딴지일보는 "사실보도를 수치로 여기는 사이비" 지적
가짜뉴스 생산하는 외신이지만 국내에서 인용되기도

미국 매체 '위클리 월드 뉴스'는 유머와 흥미 위주의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주말 트럼프는 51구역에 방문해 여러 외계인들을 만났다. 힐러리는 1990년대에 외계인 아기를 입양한 후, 외계인들의 투표를 위해 열심히 로비했다. ”

어뷰징 기사의 허무맹랑한 내용 같지만 놀랍게도 ‘언론’을 표방했던 매체에서 나온 말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요즘 모습과 달리, 오래전부터 스스로 가짜뉴스에 뛰어든 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 이하 WWN)의 이야기다. 1979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 매체는 슈퍼마켓에 무가지로 배포되면서 독자층을 형성했다. 지난 2007년 8월 지면 발행이 중단됐지만,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계속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1998년 딴지일보는 조선일보가 WWN을 인용해 오보를 낸 사건을 이야기하며 “(WWN은) 사실보도를 수치로 생각하고, 단 하나라도 사실인 것을 보도할 때는 편집진 모두 자폭할 각오가 되어있는 프로 사이비 잡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면 매체도 폐간됐겠다, 이제는 딴지일보의 평가처럼 아예 사실 보도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 사이트 메인 화면에 ‘세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뉴스’라는 구호를 달고 있으면서도 유머와 흥미 위주의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활’과 ‘외계인’을 사랑한 WWN

WWN은 대중들의 관심이 몰리는 유명인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마이클 잭슨,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아돌프 히틀러 등 이미 고인이 된 인물들이 “살아났다”고 주장했다. 한때 가짜 보도로 미국 대중음악 팬들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것운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는 기사였다. 엘비스의 죽음은 위장된 것이며,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에는 엘비스가 버거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담았다는 위조 사진이 첨부됐다. 이로 인해 당시 팬들은 엘비스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으며 ‘엘비스 생존설’로 가짜정보를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WWN의 기사. WWN은 이외에도 엘비스 이야기를 여럿 다뤘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불안한 대중 심리를 공략한 기사들도 있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후 WWN은 미국을 향한 테러가 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사에 등장한 인물들은 김정일,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 등 미국에 적대적인 정치인들이었다. 김정일이 미국을 침략하고 최후에는 정복까지 노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후세인이 이라크에서 공룡으로 구성된 군대를 키우고 있으며 빈 라덴과 결혼해 아이까지 낳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빈 라덴이 복제된 아돌프 히틀러를 알카에다에 영입했다는 엉뚱한 이야기도 있었다. 세기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버릇은 고치지 못한 모양이다.

부활 소재와 함께 WWN이 각별히 사랑했던 또 다른 주제는 외계인이다. 1994년에는 미 의회를 출입하고 있는 상원의원 12명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상원의원이 “그 사실(외계인설)을 파악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정말 놀랍다.”는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발언 또한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WWN은 미국 선거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의 러닝메이트가 '빅풋(미확인 동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P'Lod이라는 이름의 외계인은 WWN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스타다. WWN은 “이 외계인은 당시 미국 여성 정치인들과 알고 지냈으며 힐러리 클린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넘치는 질투심 때문에 급기야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싸움까지 벌였다고 말했다. 후에 이 외계인은 힐러리를 떠나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대놓고 가짜…국내 언론서 인용하기도

지난 2016년 전북의 한 지역 매체는 ‘과학과 신앙의 오묘한 신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허블 망원경으로 천국이 관찰됐다는 내용이었다. 아득히 먼 성단에서 초점을 맞추다 보니 찬란한 천국 세계가 촬영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조작이 아닌 진짜로 결론”이라는 강한 확신까지 담겼다. 이 지역 매체는 WWN이 1994년 보도했던 기사를 근거 자료로 삼았다. 당시 WWN의 기사도 ‘허블 망원경에 의해 천국이 촬영됐다’로 같은 제목이었다.

허블 망원경으로 천국을 발견했다는 WWN의 기사 사진. 이 내용은 지난 2016년 전북의 모 지역매체에 인용됐다. (자료=유튜브 영상 갈무리)

가짜뉴스는 지역 매체 뿐만 아니라 중앙 언론에서도 재생산됐다. 기독교 정신을 표방하는 국내의 한 일간지는 지난 2009년 온라인에서 ‘가슴 큰 여성 아이큐가 더 높다’라는 기사를 냈다. 가슴이 큰 여성은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영리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자료 출처는 역시 WWN이었다. 본인들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는지, 기사 말미에 “반드시 낮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는 내용을 함께 실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카테고리에서 ‘위클리 월드 뉴스’로 검색하면 이를 인용한 매체들을 확인할 수 있다. 낯선 매체 사이에서 종종 누구나 알 법한 언론사의 이름들도 눈에 띈다. 마치 성지 순례처럼, WWN 인용은 신생 언론사들이 한 번씩 거치는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인용을 계속하는 곳도 있고, 더 이상 소재를 가져오지 않는 곳도 있다.

(그림=이미지투데이)

외신도 검증하는 자세 갖춰야

국내 언론사에서 외신을 무분별하게 인용하거나 오역하는 사례는 수 없이 많았다. WWN이 활개치던 20세기를 이미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유력 일간지에서 외신을 잘못 해석해 특정 제품에서 암 발생율이 높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WWN처럼 외국어로 가득한 외신 보도에 대해서는 이상한 신빙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 어느 언론사가 저명한지, 어느 언론사가 가짜뉴스를 자주 생산하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사실처럼 믿었던 해외 가짜뉴스는 오역과 어뷰징을 거쳐 국내 매체로 재생산된다.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과 별개로 기사에서 인용하는 외신도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스냅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