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람-이승호'가 SK 불펜의 완성을 의미하는 이유

by정철우 기자
2008.11.14 09:36:24

▲ 정우람(왼쪽)-이승호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성근 SK 감독이 야인시절 한 스포츠 전문지 해설위원을 할 때 이야기다.

관전평을 위해 경기를 지켜보던 김 감독은 종종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를 한,두 타자 상대로 끝내지 않고 1,2이닝까지 끌고 갈 수 있다면 투수 운영이 훨씬 원활해질 수 있다. 감독할 때는 잘 몰랐는데 뒤에서 보다보니 알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김 감독이 그리던 그림은 시간이 한참 흘러 2008년이 돼서야 완성됐다. 정우람과 이승호가 바로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해도 SK 역시 가득염 김경태 등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체제로 운영됐다. 둘 모두 제 몫을 다해줬지만 우타자를 상대로는 좀처럼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정우람과 이승호는 좌투수임에도 우타자에게도 강세를 보이며 김 감독의 마운드 운영 폭을 크게 넓혀줬다.

정우람은 정규시즌서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1할5푼5리(좌타자 .214)에 불과했다. 이승호 역시 1할6푼9리의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을 기록, 두둑한 신임을 받고 있다.

좌완 투수가 긴 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는 롱 릴리프로 자리잡게 되면 마운드 운영에는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단기전서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우선 기용되는 투수의 수를 줄일 수 있다. 단기전에 대한 부담은 불펜 투수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김성근 감독은 "단기전에 등판하는 모든 투수들이 제 몫을 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좌완 불펜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우완 불펜의 몫까지 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또한 상대 타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상대팀 핵심 좌타자를 막은 뒤에도 마운드에 남아 다음 타순에 돌아오는 좌타자까지 승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K는 지난달 끝난 한국시리즈서 불펜 사정이 원활치 못했다. 특히 조웅천 정대현 등 믿을맨들이 흔들리며 고비를 맞기도 했다.

정우람과 이승호는 이런 위기를 넘겨준 구세주였다. 좌타자는 물론 우타자를 상대로도 안정감 있는 투구를 선보이며 급한 불을 꺼줬다.

9번부터 3번까지 4명 연속 좌타자를 기용했던 두산이 3차전 이후 좌-우-좌-우로 징검다리 타순을 짜 봤지만 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시아 시리즈서도 정우람과 이승호의 존재감은 든든하다. 특히 이승호는 13일 세이부 라이온스와 예선 첫 경기서 3이닝 동안 볼넷 2개만을 내주는 호투로 세이브를 따냈다.

김성근 감독은 "정규시즌에선 정우람이 우타자를 상대로도 좋은 공을 던져 큰 힘이 됐다. 한국시리즈부터는 이승호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역시 선발투수 경험이 있는 만큼 우타자를 상대로도 좋은 공을 뿌린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