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스에 약한 이대호? 'S존 타율' 높여라

by정철우 기자
2014.09.02 09:22:58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빅 보이’ 이대호(32.소프트뱅크 호크스)는 2014시즌을 나름 잘 치르고 있다. 타율은 3할4리로 5위, 최다 안타 부문은 144개로 2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을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법 잘 해내고 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가 1위 팀의 4번 타자이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13개의 홈런과 52개의 타점을 기록 중이다. 각각 12위와 13위에 올라 있다. 2할2푼8리의 득점권 타율은 아무래도 아쉽다. 모본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임팩트 있는 한 방이 적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8월29일 라쿠텐전서 연장 10회 결승타를 쳤지만 이후 두 경기선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특히 31일엔 연장 10회 무사 1,2루 찬스서 병살타를 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대호가 찬스에서 약하다’는 명제를 받아들게 되면 먼저 드는 생각은 ‘아, 치려는 욕심이 많은 이대호가 나쁜 공에 손이 많이 나가고 있구나’라는 가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교한 컨트롤을 지닌 일본 투수들이 이대호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 것이며, 또한 이대호에게 맞지 않기 위해 좋은 공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만든 결과다.

하지만 지금 이 가정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우선 현재 일본 투수들은 이미지 처럼 그렇게 완벽한 제구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대호를 경계한다고는 해도 무조건 볼만 던지고 있을 수는 없다. 어렵게 승부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투수들이 늘 원하는 곳에 공을 집어 넣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대호의 코스별 타격 성적을 살펴보면 답은 의외의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대호 코스별 타격 성적. 상단은 타수-안타, 하단은 홈런/삼진. 가운데 짙은 부분이 스트라이크 존.
이대호가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낮은 존에 손이 많이 나가며 좋은 타구를 만들지 못했다. 낮은 볼이 되는 공을 건드린 것은 모두 72번이며 이 중 안타는 10개 뿐이다. 타율이 1할3푼9리에 불과하다. 삼진은 35개를 당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이 같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이대호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공략해서 안타를 만드는 비율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를 풀어가 볼 필요가 있다.



이대호는 9개의 존으로 나눈 스트라이크 존에서 342타수 121안타를 기록, 타율 3할5푼4리를 기록중이다. 나쁘지 않은 성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은 공을 쳐서 만든 결과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현재 퍼시픽리그 홈런 3위에 올라 있는 메히아(세이부)는 올 시즌 가장 성공적인 외국인 선수로 꼽힌다. 시즌 중반에 합류했음에도 홈런 1위 그룹(페냐, 나카타)과 1개 차이만을 보이고 있다. 5월 중순에 합류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먼저그의 코스별 타격 성적을 보자.

메히아 코스별 타격 성적. 상단은 타수-안타, 하단은 홈런/삼진. 가운데 짙은 부분이 스트라이크 존.
메히아 역시 일본 특유의 떨어지는 공에 큰 약점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이대호 보다 성적이 더 나쁘다. 낮게 떨어지는 볼을 54번이나 건드렸지만 안타는 고작 2개를 쳤을 뿐이다. 삼진을 무려 48개나 당했다. 메히아의 타석이 이대호 보다 191개나 작은 점을 감안하면 그가 낮게 떨어지는 공에 얼마나 약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메히아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은 대부분 안타를 만들었다. 196타수에서 83안타를 치며 타율 4할2푼3리를 기록 중이다.

유인구에 당하는 비율은 높지만 대신 실투를 놓치지 않는 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가 임팩트 있는 타격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메히아는 78경기서 57타점을 기록, 120경기서 52타점을 뽑은 이대호를 앞서 있다.

이대호가 스트라이크를 안타나 홈런으로 만드는 비율이 떨어진다는 건 심리적 요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너무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은 많은 생각을 만들고, 그런 생각은 뻔히 칠 수 있는 공을 놓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승엽이 일본에서 뛸 당시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2010시즌, 한 가운데로 들어 온 공의 타율은 ‘0’이었다. 실투를 치지 못할 만큼 쫓기고 있었던 탓이다.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 시절, 투수를 압도했던 타자다. 모든 투수의 공을 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 심리적 우월감은 그가 여유있는 타격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배드볼 히터라는 말이 나올 만큼 볼이 되는 공 까지 홈런을 만들어냈던 타자가 바로 이대호다.

‘나쁜 공에 속지 않는 것 보다 좋은 공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코스별 타격 성적이 지금 이대호에게 보내고 있는 메시지다.

이대호. 사진=IB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