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날을 만들자)<4부>(19)투자문맹 `가난의 대물림`을 막자

by지영한 기자
2006.11.30 11:30:00

금융문맹 퇴치 시급..`투자의날`이 좋은 계기
'아는 만큼 보인다"..노후대비는 투자교육부터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부모로서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많은 덕목 중 하나는 '돈 관리 하는 법' 즉, 경제 관념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어머님은 저에게 고기를 낚아 주시기 보다는 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신 좋은 스승이셨습니다."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의 말이다. 증권사 월급쟁이로 출발해 국내 펀드의 대명사인 '미래에셋'을 탄생시킨 박현주 회장. 그를 두고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한국 자본시장의 '뉴 리더'라는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박 회장은 오늘의 그가 '어머니'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농사와 살림을 도맡았다. 박 회장이 대학(78학번)에 입학해 서울 생활을 시작하자, 박 회장의 어머니는 매년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한번에 부쳐 주었다. 자식이 대학생이 되었으니, 돈 관리하는 법을 깨우치고 배우라는 의미였다.

박 회장은 매월 용돈을 타서 쓰는 친구들은 월 단위로 계획을 세운 반면, 자신은 연단위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목돈이 있다 보니, 이를 잘 관리하면 일정부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투자'라는 개념에 눈을 떴고, 이러한 경험들이 자신이 성장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일까. 박현주 회장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금융·경제 교육' 만큼은 매우 엄격하다. 예컨대 아이들에겐 어려서부터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값의 반을 모으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 나머지 반을 박 회장이 대주는 식으로 교육을 시켰다. 

박 회장은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꼭 필요한 것에 대해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사고 있다"며 "물건 값의 반을 본인들이 치러야 하기 때문에 '효용'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투자'에 눈을 뜨는 계기와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박 회장의 경우엔 대학 2학년 때부터 주식투자를 했고, 대학원시절엔 잠깐이나마 자그마한 투자자문회사를 차릴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돈'에 대한 교육을 터부시 하는 우리의 실정에선 박 회장 처럼 '투자의 세계'에 비교적 일찍 눈을 뜬 사람은 많지 않다. 

박 회장의 대학 2년 선배인 A씨는 "대학시절 박 회장이 주식을 한다고 하길래 '특이한' 후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회장의 고등학교 친구인 B씨는 "사회 초년병 시절 친구들이 모이면 박 회장은 늘 '주식' 얘기만 했는데, 친구들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박 회장에게 주식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투자'라고 하면 '공장을 짓는데 들어가는 돈' 정도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주식은 투자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주식시장하면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상당수 부모들은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고 자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유는 있다. 서구 자본시장 선진국에 비해 '투자'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투자상품은 '위험'과 '수익'이 공존한다. 이러한 투자위험을 낮추고 적절한 기대수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분산과 장기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투자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비근한 예를 들자. 불과 몇 년전만 해도 한국에선 '스폿펀드(Spot Fund)'가 난무했다. 이 상품은 개인들의 자금을 모아 기관들이 운용하는 명색이 펀드상품이다. 하지만 펀더멘탈이나 내재가치 분석이 불필요한 상품이었다. 기술적 등락과 재료에만 의존했을 뿐이고, 목표수익만 달성하면 단 며칠 만에도 청산되는 초단타 '투기상품'이었다.

기관들은 투기적 단기거래를 유도함으로써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데 집중했고, 투자교육과 투자자보호는 항상 뒷전이었다.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고칠 점이 많다. 증권사들은 단기적인 예측과 전망을 쏟아내며 투자자들의 단기투자를 조장한다. 투자설명회 등의 명목으로 투자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등장했지만, 단기시장에 대한 투자기법과 같은 '투자자문'에 가까운 활동이 대부분이다.





비단 증권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근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주식과 채권 등 투자상품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가 매우 낮은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렇다 보니 국민들은 자산운용의 장(場)으로서 자본시장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투자교육에 대한 국민 개개인들의 '자발성'마저 뒤쳐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조기퇴직과 고령화로 직장인들은 은퇴 후 노후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고령화에 저출산 문제까지 가세해 공적연금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가계의 자조(自助) 노력이 절실하지만, 저금리로 마땅한 수단이 없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부동산 불패신화(不敗神話)'에 편승해 부(富)를 축적해왔다. 앞으로가 문제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이 많게는 5분1 수준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래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의존도를 낮추고 금융자산을 늘릴 것을 주문한다. 금융자산중에서도 자본시장 선진국에 비해 특히나 열악한 '투자자산'의 비중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조언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국민들이 먼저 금융환경 변화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다. '투자'의 개념과 그 필요성도 피부로 절감해야 만 한다.

김근수 교수는 "20~30년간에 걸쳐 노후를 준비한다면 이제는 '저축'보다는 '투자'가 훨씬 낫다는 것을 적극 홍보할 때"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투자자교육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자교육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낮다고 꼬집었다.  

▲ 투자를 알면, 노후가 보인다.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자교육은 연중 내내 이루어져야 하며, 매일매일이 투자자를 위한 날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변 교수는 특히 "투자는 '직접금융'을 활성화시켜 국민경제에도 이롭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연구가 됐다"며 "이 같은 내용도 교육을 통해 국민들에게 적극 알 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교수는 '투자'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데일리를 중심으로 제안되고 있는 '투자의날' 제정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국민들에게 '투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고, 일련의 투자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투자자교육을 연중 지원하는 '날'로서 '투자의날'은 의미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나의문화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우리의 문화유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을 남겼다. '투자자교육'도 마찬가지 이치다. 글자를 모르면 생활만 불편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마저 불가능하게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의 말이다.

지금은 우리 국민의 자조(自助) 노력이 절실한 때다. '투자의날'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는 그래서 명분이 있다.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