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섐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우승해 기쁘다"

by주영로 기자
2020.07.07 06:00:00

PGA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 3타차 역전 우승
마지막 3홀에서 연속 버디로 매튜 울프 따돌려
독특한 스윙자세에 늑장 플레이로 기피 대상 1호
실력만큼은 정상급..우승으로 세계랭킹 7위 도약
장타 치기 위해 식사량 늘리며 헐크처럼 몸집 불려

브라이슨 디섐보가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남자 골프 세계랭킹 10위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의 이름 앞엔 ‘골프 기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정석에서 벗어난 스윙 자세, 아이언 클럽을 모두 37.5인치 길이로 만들어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골프세계가 독특해 붙여졌다. 그러나 남들과 다를 뿐 틀린 건 아니었다. 디섐보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골프스타일를 추구하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6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디섐보는 6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디트로이트 골프클럽(파72야드)에서 열린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총상금 750만달러)에서 시즌 첫 승을 올렸다.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1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쳐 최종합계 23언더파 265타를 적어낸 디섐보는 매튜 울프(미국·20언더파 268타)를 3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선두 울프에 3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디섐보는 전반 9개 홀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골라내며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올해 몸집을 키워 근육질로 거듭난 디섐보는 힘이 더해지면서 PGA 투어에서도 내로라하는 장타자가 됐다. 이번 대회에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1번홀에서 티샷을 363야드 보낸 뒤 43야드 거리에서 공을 홀 3.5m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디섐보가 흔들림없는 경기 운영으로 4타를 줄이는 사이 울프는 2타를 잃어 선두를 내줬다.

후반 들어 울프의 반격이 시작됐다. 10번홀(파4)에서 다시 보기를 적어내 디섐보와 격차가 더 벌어졌지만, 12번홀을 시작으로 13번, 15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1타 차로 간격을 좁혔다. 그러나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디섐보는 마지막 3개홀을 남기고 버디 3개를 쓸어 담으며 2타 차 선두로 먼저 경기를 끝냈다. 울프는 18번홀에서 이글에 성공해야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으나 파에 그쳤다.

2018년 11월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오픈(2018~2019시즌)에서 투어 통산 5승째를 거뒀던 디섐보는 개인 통산 6승을 달성했다.

대학(미국 남부감리교대학·SMU)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디섐보의 또 다른 별명은 ‘필드의 물리학자’다. 경기 중 사용하는 야디지북(코스를 분석한 노트)을 직접 만드는 데 제도용 컴퍼스를 이용해 선을 그어 거리 확인을 쉽게 하는 등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한다. 보통은 선수와 캐디가 직접 코스를 걸으며 거리를 확인하고 경사를 살핀다.

이번 시즌엔 90kg이던 체중을 110kg까지 늘리고 필드에 등장했다. 보통의 선수들은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체계적인 운동을 해 몸을 만들다. 디섐보는 그런 몸매를 원하지 않았다. 다소 뚱뚱해 보이는 몸이지만, 힘을 더 내기 위해 선택했다.

디섐보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체중을 늘리기 위해 매일 3000~3500㎉의 음식을 먹었다”고 밝혔다. 아침 식사로 달걀 4개와 베이컨 5장, 토스트를 먹고 점심엔 샌드위치와 에너지바, 저녁에 스테이크와 감자를 먹었고, 단백질 음료는 6개씩 복용했다고 식단을 공개했다.



이런 변신은 오로지 거리를 멀리 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 덕분에 지난 시즌 302.5야드였던 드라이브샷 평균거리는 올해 320.1야드까지 크게 늘었다.

이번 대회에선 1라운드 358야드(라운드별 드라이브샷 평균거리), 2라운드 335야드, 3라운드 348야드, 4라운드 360야드의 괴력을 선보였다. 4라운드 평균 350.6야드를 기록, 2003년 샷링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승자 중 최장타 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기 중에는 399야드의 13번홀(파4)에서 디섐보는 앞 조 선수들이 그린에서 경기하고 있자 자신의 티샷 순서를 바꿔 마지막에 치기도 했다. 공이 그린에 올라갈 수도 있어 경기 중인 선수들을 배려한 행동이었다.

디섐보가 장타에 집착한 이유는 ‘카지노 불패 이론’에서 출발했다. 밑천이 두둑한 카지노는 그 어떤 도박꾼을 상대해도 패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골프에 적용해 ‘멀리 쳐놓으면 온그린이 쉬워진다’는 자신만의 이론을 실행하고 있다.

워낙 독특한 행동에 한때는 경기 진행 속도가 느려 동료로부터 ‘슬로 플레이어’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2019년 미국 골프닷컴이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디섐보는 함께 라운드하기 싫은 선수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미움을 샀다. 그런 평가 뒤 디섐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미안함과 함께 개선 의사를 밝혔다.

동료들 사이에선 인기가 없는 선수였으나 실력만큼은 정상급을 유지했다. 2017년 존디어 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디섐보는 2018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노던트러스트, 델 테크놀로지 챔피언십, 슈라이너스 아동병원오픈에 이어 이날 통산 6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데뷔 이후 매 시즌 1승 이상을 추가하고 있으며 이날 우승으로 세계랭킹 7위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디샘보는 “남들과 다른 길을 추구했기에 내게는 뜻깊은 우승”이라면서 “나는 몸을 바꿨고 골프 경기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승했다”고 우승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코리안 브라더스’는 이경훈(29)이 10언더파 278타로 공동 45위에 올랐고, 임성재(22) 공동 53위(9언더파 279타), 김시우(25)와 노승열(29)은 공동 57위(8언더파 280타)로 대회를 마쳤다.

브라이슨 디샘보가 팔꿈치를 쭉 편채로 퍼트해 공을 굴리고 있다. (사진=AFPBB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