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만난 롯데카드 매각…3대 쟁점 따져보니

by박종오 기자
2019.05.17 06:03:42

서울 중구 남창동 롯데카드 본사 입구 및 한앤컴퍼니 기업이미지(CI) (사진=연합뉴스·한앤컴퍼니)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롯데카드 매각이 안갯속이다. 인수 우선권을 쥔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 대표의 탈세 의혹이 불거져서다. 이번 논란의 3대 쟁점을 짚어봤다.

의혹의 핵심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코가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것이다. KT 새노동조합은 앞서 지난 3월 황창규 KT 회장과 한상원 한앤코 대표 등 5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 배임,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KT와 KT 계열사 나스미디어는 2016년 한앤코로부터 광고 대행사 엔서치마케팅(현 플레이디)을 600억원에 사들였다. 새노조는 황 회장 등이 엔서치마케팅을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계산한 시가인 176억원보다 3배 이상 비싸게 인수해 KT에 손해를 끼쳤고, 한앤코도 KT로부터 사실상 증여받은 차익(424억원)에 대한 법인세를 내지 않는 불법 행위를 했다고 주장한다. 한 대표가 엔서치마케팅의 회계 장부상 자산을 고의로 부풀려 회사를 고가에 매각하고 탈세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법인 대표가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을 받으면 신용카드사 등 금융회사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없다. 검찰은 이달 초 고발인 조사를 시작으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첫째 쟁점은 한앤코가 정말 엔서치마케팅의 가치를 뻥튀기했느냐다.

한앤코는 2014년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 소유의 엔서치마케팅을 한앤코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인 메이블을 통해 인수한 후 두 회사를 합병시켰다. 일반적인 합병과 달리 주식 발행 등 합병의 대가를 지불한 엔서치마케팅이 사라지고 메이블이 사실상 존속 회사로 살아남는 회계상의 ‘역(逆) 합병’을 했지만, 합병 후 회사 이름은 다시 엔서치마케팅으로 정했다. 기존 ‘한앤코→메이블→엔서치마케팅’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한앤코가 합병 회사를 종속 회사로 두고 직접 지배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새노조 측은 한앤코가 인수 직전인 2013년 약 2억원에 불과했던 엔서치마케팅의 무형자산(형태가 없지만 미래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자산)이 인수 직후 176억여원으로 90배가량 불어난 것이 부당한 회계 처리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처럼 자산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영업권’ 때문이다. 영업권은 목 좋고 단골 많은 가게를 인수할 때 권리금을 웃돈으로 지불하는 것처럼 기업의 인수·합병(M&A) 때 시가보다 더 지급한 금액을 인수한 회사의 무형자산으로 반영하는 회계 처리 방법이다.

메이블의 2014년 엔서치마케팅 지분 인수로 발생한 영업권 (자료=금융감독원)
엔서치마케팅의 감사 보고서를 보면 한앤코의 100% 자회사인 메이블은 2014년 5월 엔서치마케팅 지분 전량을 인수하면서 네이버에 311억원을 지불했다. 당시 평가된 엔서치마케팅의 순 자산 가치(자산-부채)는 166억원이었다. 메이블이 순 자산 평가액보다 더 지급한 145억원은 그해 8월 메이블과 엔서치마케팅을 합병해 설립한 새 회사인 엔서치마케팅의 회계 장부상 영업권 즉 무형자산에도 반영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한앤코 인수 직후 엔서치마케팅의 무형자산 증가를 고의적인 뻥튀기라고 볼 수는 없다고 회계 업계는 설명한다. 합병 후 엔서치마케팅의 무형자산에는 기존 엔서치마케팅의 무형자산(약 2억원)뿐만 아니라 한앤코가 엔서치마케팅을 인수할 때 네이버에 지불한 웃돈, 메이블의 무형자산 등이 포함돼서다. 합병 회사인 엔서치마케팅의 전신은 사실 네이버에 웃돈을 내고 영업권을 획득한 메이블인데, 합병 후에도 엔서치마케팅이라는 회사명을 쓰다 보니 한앤코 인수 직후 자산 가치가 급증한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쟁점은 한앤코가 KT에 엔서치마케팅을 시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사실상의 ‘편법 증여’를 받고도 고의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의심이다.

KT 새노조는 비상장사인 엔서치마케팅의 상속증여세법상 시가가 176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편법 증여의 근거로 든다. 엔서치마케팅 매각 금액 600억원 중 세법상의 시가를 뺀 424억원을 KT가 한앤코에 증여한 것인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KT 역시 탈세 혐의를 받는다. 법인이 주식을 싸게 사서 나중에 비싸게 되팔면 그 차액만큼 법인세를 부과하는데, 엔서치마케팅 고가 인수로 나중에 부담할 세금을 줄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노조 주장처럼 통상 비상장 주식이나 부동산 등 시장 가격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자산의 가치를 추정할 때 상속증여세법의 재산 평가 방법을 활용하는 것은 맞는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기업 주식 등 자산의 거래 가격이 시가보다 30% 이상 높거나 30% 이하로 낮으면 거래자가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고 보고 실거래액과 시가의 차액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규정도 있다. 자산을 시가보다 훨씬 싸게 넘겨받거나 비싸게 넘기는 것은 이익의 ‘편법 증여’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 같은 조항은 개인 간 거래에만 적용한다는 점이다. 세금 법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개인끼리의 거래에 적용하는 상속증여세법의 편법 증여 규정을 법인에까지 적용해 법인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한앤코는 엔서치마케팅 매각으로 얻은 이익만큼 이미 법인세를 냈을 것이다. 기업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매각해 양도 차익(판 금액-산 금액)이 생기면 순이익에 반영해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KT 역시 법인세법에 비정상적인 거래 가격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이는 서로 이해관계가 없는 기업 간 거래가 아니라 ‘특수 관계인’끼리의 거래에만 적용하는 까닭에 법인세법상 탈세 혐의를 적용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세무 업계는 평가한다.

한앤코는 편법 증여가 아니라는 근거로 대형 회계 법인의 엔서치마케팅 가치 평가 결과를 제시한다. KT와 엔서치마케팅을 공동 인수한 나스미디어가 2016년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한 평가 의견서를 보면 엔서치마케팅 지분 66.7%의 평가액은 363억~437억원으로 추정됐다. 엔서치마케팅 지분 100%의 적정 인수 가격이 상속증여세법상 평가액인 176억원보다 높은 544억~655억원으로 평가됐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엔서치마케팅의 자산 가치를 이 회사가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 또는 현금 흐름을 각종 전제를 적용해 추정하는 현금흐름할인법(DCF법)을 활용해 추산한 결과다.



마지막 쟁점은 KT와 한앤코 간 부당한 ‘물밑 거래’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사실 KT 새노조가 제기한 KT와 한앤코의 배임, 탈세 의혹도 이런 보이지 않는 거래의 결과라는 점에서 부당 거래 여부는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새노조 측은 한상원 한앤코 대표가 국내 유력 언론사 사장의 사위라는 점을 황창규 KT 회장이 한앤코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제시한다. 한앤코의 탈세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황 회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대형 언론사 사위인 한 대표에게 로비했거나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최순실씨가 낙하산으로 앉힌 당시 KT 전무가 한 대표와 공모해 KT의 엔서치마케팅 고가 매수를 주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앤코 측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견해다.

사진=금융위원회
향후 검찰 수사의 향방은 두 갈래로 요약된다. 먼저 KT 새노조의 고발 내용에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고 기소(공소 제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한앤코도 이를 기대하고 있다.

반대로 검찰이 황 회장, 한 대표 간 연결고리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경우 KT 새노조가 제기한 탈세 혐의 이외의 배임수재 등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는 “현재 고발인 조사를 끝낸 상태”라며 “추가로 더 진행한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검찰 수사는 롯데카드 매각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만약 수사 기간이 길어지면 한앤코 뿐 아니라 롯데카드 매각을 추진하는 롯데그룹도 부담을 안게 돼서다. 2017년 10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롯데그룹은 금융지주가 아닌 일반 지주회사(자회사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것이 목적인 회사)가 은행·카드사 등 금융사 주식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 공정거래법 조항에 따라 지주사 설립 2년 이내인 오는 10월 중순까지 롯데지주가 보유한 롯데카드 등 금융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한앤코의 법적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하면 롯데카드 인수를 원하는 차순위 기업과 매각 협상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금융그룹 산하 하나금융투자도 지난 2017년 UBS로부터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51%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지주 경영진의 국정농단 관련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지금까지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롯데그룹은 앞서 지난 3일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매각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앤코와 JKL파트너스를 각각 선정했다. 남은 절차는 주식매매계약(SPA),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신청일로부터 60일), 금융위원회 승인, 인수 대금 지급 등이다. 그러나 지난 13일로 한앤코, JKL파트너스 등 우선 협상 기업과의 배타적 협상 기간이 끝나며 사모펀드(PEF)로의 매각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