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SK그룹이 꺼내든 ‘우선주’ 카드…열린 결말의 끝은?

by김성훈 기자
2021.10.19 01:20:00

SK그룹 상환전환우선주 투자 유치 활발
SK에코플랜트·SK E&S 등 잇따라 체결
기간 약정 자금 활용+신사업 전개 전략
FI도 안정적 수익률에 향후 인수 가능성
'열린결말' 동요하는 임직원 소통 과제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SK그룹이 자본시장에서 재무적투자자(FI)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 카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잠재적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히는 SK에코플랜트와 SK E&S가 RCPS 투자 유치를 속속 이끌어내며 자금 마련과 신사업 투자가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SK그룹이 추구하는 비전을 위해 사업구조 개편에 과감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건은 약속된 기간 뒤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RCPS 방식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맺느냐다. 수년 뒤를 알 수 없는 ‘열린 결말’에 동요하는 임직원들과의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신사업 시동 위해 RCPS 카드 꺼내는 SK그룹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 E&S는 지난 12일 2조4000억원 규모의 RCPS에 투자할 우선협상대상자로 글로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선정했다. 앞서 지난 6일 진행한 본입찰에는 적격 인수후보에 올랐던 KKR과 IMM 프라이빗에쿼티(PE), IMM인베스트먼트, EMP벨스타가 모두 참여하며 경쟁을 펼쳤다. 이 때문에 당초 투자유치 규모가 2조원대로 알려졌다가 최종 투자 금액이 상향 조정됐다는 분석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키워드로 포트폴리오 변화를 꾀하는 SK에코플랜트도 플랜트(에코엔지니어링) RCPS를 통한 법인 분할 및 경영권 매각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총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9000억원 수준으로 평가한 가운데 신설법인 지분 ‘50%+1주’를 RCPS를 활용해 4500억원 안팎에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 중으로 알려졌다. 원매자 쪽에서 펀딩(자금모집)에 나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 과정이 사실상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RCPS는 만기가 도래하면 현금으로 상환하거나 보통주(또는 대상 사업부문 지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말한다. 만기 시점에 발행사가 팔았던 주식을 되사오거나 보통주로 팔 수 있는 옵션을 걸어둔 것이다. ‘완전 매각’ 대신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와는 다른 점이다.



RCPS 투자 유치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간 약정을 걸고 지분을 내준 뒤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하고 싶던 신사업에 ‘통 크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 마련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RCPS 투자 유치를 단행한 두 기업이 잠재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요소다.

시장에서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후하게 받기 위해서는 신사업 강화에 본격 시동을 걸어야 하는 시점이다. SK E&S가 수소사업 밸류업(가치상향)을 위해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점, SK에코플랜트가 올해만 폐기물 업체 세 곳을 인수하며 6100억원을 베팅한 것도 이러한 영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열린 결말에 동요하는 임직원 소통은 과제

재무적투자자(FI)들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는 평가다. 투자 기간 일정 수익률에 향후 지분 인수까지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가 진행 중인 RCPS의 경우 연 수익률 6~7% 안팎이 거론되고 있다. SK E&S의 경우도 이에 상응하는 수익률 확보가 가능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RCPS 투자 유치의 관건은 수년 뒤의 ‘열린 결말’이 어떤 마무리를 짓느냐에 쏠린다. 현금이나 보통주로 상환할 수도 있지만 RCPS 대상으로 지목된 SK E&S의 도시가스 사업부와 SK에코플랜트의 플랜트 사업부 매각 시나리오도 남아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SK그룹이 이들 사업부를 매각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번 딜에 정통한 PEF 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회사를 지탱해온 사업 부문을 팔지 않으려는 의지를 (되 사올 수 있는) RCPS로 보였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년 뒤 회사 결정이 어떨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일부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SK그룹 통신망 공사를 전담하던 SK TNS의 매각 재현 우려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2015년 SK TNS RCPS 16만주(50% 규모)를 발행하는 구조로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SK TNS는 지난해 9월까지 5년에 걸쳐 RCPS를 상환한 뒤 올해 5월 SK TNS 보유 지분 전량을 알케미스트파트너스코리아(알케미스트)에 매각했다.

결국 자신의 일이 될지 모르는 임직원들의 동요를 회사 측이 어떻게 봉합할 수 있을지가 과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직원이 동요하지 않고 납득할 수 있는 소통을 회사 측이 이끌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