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은 왜 주가조작 못 막았나[최훈길의뒷담화]

by최훈길 기자
2023.05.01 02:30:00

①3년여 걸친 전례없는 주가조작단 수법
②애널도 “사라” 권유할 정도로 인지못해
③‘주가조작 통로-인기 상품’ CFD 양면성
④인력·시스템 한계, 포렌식 전문인력 0명
⑤‘엑셀’-‘브레이크’ 혼재된 금융감독체계
⑥주가조작해도 솜방망이 처벌 수준 그쳐
이대로면 또 주가조작, 시스템 대개혁...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금융당국이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7일 비슷한 취지의 취재진 질문을 들었습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 주재로 35개 증권사 대표·임원들이 모인 간담회 이후에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증권가에서는 “금융당국이 사전에 제대로 주가조작을 막지도 못하고 증권사에만 책임을 돌리나”고 반문했습니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주가 폭락·조작 관련해 사전에 이를 탐지하는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건 사실입니다. 주가조작을 비롯한 이상거래는 1차 관문인 한국거래소, 2차 관문인 금감원, 3차 관문인 금융위라는 삼중 방어벽으로 감지됩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3년여 동안 계속된 주가조작을 1~3차 관문 모두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결과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나흘 새 8개 종목의 시가총액이 8조원 넘게 증발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은 왜 막지 못했을까요. 금융전문가인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늑장대응이라고 비판하기는 쉬우나 이번 사태를 사전에 막는 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안 교수는 “과거에 주가조작은 몇달 만에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이었는데, 이번에는 전례 없는 주가조작 수법이어서 이를 탐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주가조작의 대상이 된 8개 종목의 주가가 3년에 걸쳐 슬금슬금 올라 거래소 시스템에서 이상거래로 분류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8개 종목 중 삼천리(004690), 서울가스(017390) 등은 증권사에서 매수 의견을 받은 종목이기도 합니다. SK증권은 지난해 11월25일 이들 주식에 대해 “주가에 기대감이 반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이들 종목에 주가조작단이 개입돼 있을 거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일정 정도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돼 이 정도는 오르는 게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SG증권발(發) 주가 폭락·조작 사태로 8개 종목(삼천리(004690), 서울가스(017390), 대성홀딩스(016710), 세방(004360), 다올투자증권(030210), 하림지주(003380), 다우데이타(032190), 선광(003100))의 시가총액이 지난달 21일 12조1949억원에서 3조9865억원으로 8조원 넘게 증발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각각 종가 기준 시총, 단위=원. (자료=한국거래소)


여기에는 차액결제거래(CFD)가 가진 양면적 특성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CFD가 이번에 주가조작 통로가 됐지만, 최근까지도 증권사 인기 상품이었기 때문입니다. CFD는 주식이 없어도 증권사를 통해 레버리지 투자(빚투)를 할 수 있는 장외 파생상품 거래입니다. △소규모 담보(증거금 40%)로 수익률(최대 250%) 극대화 △공매도 효과 △절세 수단 △외국인으로 표기돼 실투자자 비공개 등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액자산가를 중심으로 연간 70조원(2021년 기준) 넘게 CFD가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사전 탐지·규제를 왜 못했는지’ 묻는 질문에 “(금융당국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금융시장을 담당하는 정책기관으로서의 성격이 있다”며 “활동력 있는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 범법자 내지는 위법의 시각으로 볼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회색지대 부분을 불법의 잣대로 사전에 모든 거래를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CFD 거래 허들을 낮추면서 시장 규모도 급격히 커졌다. 연도별 CFD 잔고는 작년 말 2조3000억원에서 올해 3조5000억원(2월말 기준)으로 50% 넘게 급증했다. CFD 거래 규모도 2020년 30조9000억원에서 2021년 70조1000억원으로 2년간 두 배 넘게 뛰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물론 이같은 이유로 사전 탐지·규제를 못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금융위는 ‘매도 폭탄’이 터지기 전인 4월 초에 주가조작 제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금감원에는 관련 제보가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금융위가 단독으로 제보를 받은 뒤 의도적으로 뭉갰는지, 대응했지만 부족했는지, 금융위·금감원·검찰이 물밑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했는지, 제보가 새서 일부 기업 오너들에게 흘러들어갔고 이들이 이 정보로 지분 매각에 나섰는지 등은 현재로선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의혹은 앞으로 수사를 통해 진상이 가려져야 할 부분입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현재 금융위의 증권범죄 관련 인력·시스템이 이대로 가면 ‘제2의 주가조작’을 제대로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2013년 5조8000억원에서 2021년 27조3000억원으로 5배 가량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개인투자자는 475만명에서 1374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에 윤석열정부는 국정과제로 ‘증권범죄 대응 강화’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국정과제임에도 제대로 된 인력·시스템 보강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금융당국 안팎의 평가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새정부 출범 이후 증권범죄 대응을 위해 증원된 금융위 공무원은 3명(과장 1명·사무관 1명·주무관 1명)뿐”이라며 “주가조작을 잡기 위한 디지털포렌식 전문인력은 0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권 범죄 관련 포렌식을 해야 할 때마다 검찰에 SOS를 쳐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함용일 금융감독원 주재로 열린 ‘증권업계 시장현안 소통회의’에 참석하면서 기자들과 만났다. 황 사장은 키움증권 오너인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폭락 전에 605억원 규모의 다우데이타 지분을 매각한 것과 관련해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그는 “(김 회장 관련해) 0.0001%도 의혹이 없다. 직을 걸겠다”며 “(김 회장이) 지금까지 한 번도 불명예스러운 일이 없었는데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김태형 기자)


결국 중요한 점은 속도감 있는 수사와 함께 시스템 정비를 시급히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금융당국의 인력·시스템을 보강해야 합니다. 제도개선에도 착수해야 합니다. △CFD 증거금 최소 비율(현행 40%) 상향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 강화 △CFD 만기 도입 및 잔고 공시 관련한 본격적인 제도개선 공론화도 필요합니다. 금융위가 2019년 11월에 시장 활성화 취지로 CFD 규제를 완화(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한 것은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합니다.

더 나아가 ‘금융감독체계 개편’도 검토해봄직합니다. 현재는 금융위가 액셀(산업정책)과 브레이크(감독기능)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19년에 CFD 규제를 완화했던 금융위가 이번에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나온 대안으로는 금융위에서 감독 기능을 분리해 금감원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만 전례 없는 주가조작 사태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회계와 공시의 투명성을 높이고 미공개 정보이용, 주가조작 같은 증권범죄의 수사와 처벌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개편해 투자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대로 전반적인 시스템 개편, 제도개선이 필요한 때입니다. 주가조작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현행법도 개선해야 합니다. 투자자 피해가 벌어진 지금은 좌고우면 하지 말고 시급히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