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못해" Vs "투자자 보호 Vs "중장기 과제"…암호화폐 제도화 당정 온도차

by이명철 기자
2021.04.27 01:00:00

금융위 “가상화폐 인정할 수 없다…투자자 보호 못해”
민주당 “2030 투자자 공감…투기세력 없애고 제도화”
기재부 “거래내역 완벽 파악시 금융자산 과세 검토”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한광범 기자]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일파만파다. 일부 투자자들은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이유로 투자자 보호는 하지 않으면서 세금만 걷어간다고 반발하고 있다.가상화폐 주요 투자자인 2030세대의 분노에 놀란 정치권은 제도화를 검토하겠다며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정부내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다”는 금융당국과 달리 과세당국인 기획재정부는 거래투명성 확보 등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중장기적으로 제도권 편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상화폐들의 합산 시가총액이 2조달러를 돌파한 지난 5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서 시세 전광판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성수 “실체없는 가상화폐 인정 못해”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제도화에 부정적이다.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방안을 묻는 의원 질의에 “가상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며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정부가 보호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은 위원장은 “좀 안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또한 오는 9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현재 등록 여건을 갖추지 못한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정부가 세금을 징수하면서 투자자 보호는 모르쇠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3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청원은 나흘만인 26일 기준 12만6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게시글 작성자는 은 위원장에 대해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에는 발을 빼고 세금을 내라고 한다”며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홍남기 “금융자산으로 과세도 검토”

과세 당국은 소득에 세금을 물린다는 과세 원칙을 반영해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를 추진 중이다. 주요 20개국(G20)이 지난해 6월 정상회의에서 가상화폐를 자산의 일종인 암호자산(Crypto asset)으로 분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화폐 거래소득에 소득세를 부과한다. 올해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과세 인프라 등을 감안해 3개월 미뤘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내야 할 세금은 발생 소득에서 기본 공제(250만원)와 필요 경비 등을 제외한 금액에 지방세(2%)를 포함해 22%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으로 한해 1000만원의 차익을 남긴 투자자라면 공제를 제외한 750만원에 대해 약 165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기재부는 중장기로 가상화폐도 제도권 내에 두고 금융자산과 비슷한 투자자 보호·과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로선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홍남기 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에 대해 “거래내역이 거의 완벽히 파악되고 체계적으로 되면 금융자산으로 과세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일단 내년에는 기타소득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 공제 금액 상향과 과세 유예를 요청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이미지=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갈무리)
이광재 “가상화폐 제도화해 투자자 보호해야”

악화한 2030 민심에 놀란 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를 제도화하고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별도의 가상화폐 대응기구 설치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26일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왜 2030 청년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게 됐는지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겠다”며 투자자 보호 등 정책 검토를 시사했다.

같은당의 이광재 의원도 같은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가상자산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서 세금을 매긴다고 하는데 그럼 결국 실체가 있다는 말”이라며 “투기 세력을 없애고 제도화해야 2030을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내에서는 가상화폐 자산 과세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자산가치가 없는 곳에 세금을 걷겠다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며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세를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가상화폐 과세를 1년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식에 이어 가상화폐 과세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면 정부 과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023년부터는 모든 상장 주식 양도차익(5000만원 공제)에 대한 과세할 방침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로 볼 때는 가상화폐도 투자자산으로 인정하고 양도세를 과세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관련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며 “가상자산 과세는 예전부터 예고한 방향인 만큼 최근 투자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정책을 유예하거나 한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는 올 들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에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하는 케이뱅크 신규 가입자수는 올해 1월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28만명, 2월 64만명, 3월 80만명으로 급증했으며 이달에는 1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년(2018~2020년) 총 가입자수(157만명)을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