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이 혁신]③"규제양산하는 공무원부터 규제해야"

by방성훈 기자
2019.02.05 01:00:00

무작정 네거티브보다는 현실에 맞게 ‘先허용 後규제’
"개별구제'가 대안…美FDA도 '사전허용' 시도"
"책임지는 정부 필요…규제 참여 시점·강도도 중요"
"정부가 공급자 돼선 안돼…민간에 맡겨라"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인터넷 초창기 시절 의회는 규제 유혹을 이겨냈고 시장에 확실성(Certainty)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때와 같은 ‘승리’를 또다시 미국 경제에 가져오고, 이 혁신적인 산업에 미국적 리더십을 가져오는 것이 목표다.”

미국 공화당 워렌 데이비슨 하원의원은 지난해말 ‘토큰 분류법(Token Taxonomy Act of 2018)’을 제출하며 이같이 밝혔다. 1933년 제정한 증권법과 1934년 제정한 증권거래법을 개정해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유가증권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는 게 이 법안의 요지다.

한국에 알맞는 규재개혁 방향은 무엇일까? 금지한 것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는 모두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무작정 규제를 없애고 풀어주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 겸 카이스트 교수, 곽노성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 교수, 구태언 태크앤로 대표 변호사,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 교수에게 들어봤다. 네 명의 전문가들은 카이스트 도곡캠퍼스에서 토론회를 열고 우리나라 규제개혁 방향은 국내 현실에 맞게 ‘선허용·후규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화 이사장은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난 국가인데도 ‘포지티브(열거된 것만 허용)’ 규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 내부 합의 시스템은 취약하다.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라고 지적했다.

김태윤 교수는 “현행 법령 체계에선 전면적인 네거티브화는 어렵다. 법 체계를 초월한 요구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규제를 구호화 하기보다는 법의 기본 정신이 네거티브적이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네거티브 정신도 살리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사전허용을 전제로 한 ‘개별규제’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사전허용(pre-certification )’ 프로그램을 예로 제시했다.



그는 “미국에서 규제가 가장 강하다는 FDA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믿을 만한 기업을 선정하고 해당 기업과 함께 서비스 및 제품의 위험성을 분석하는 연구 프로그램이다. 위험성을 9단계 또는 18단계로 분류해 확인이 가능토록 한 뒤, 특정 위험이 있는 서비스·제품에 대해 우선적으로 시행·출시가 가능토록 하는 제도다. 모니터링은 사후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심은 기업을 파트너로 생각하고, 신뢰할 수 있으면 믿어주고, 서비스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곽노성 교수도 선허용·후규제를 주장하며 이 역시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제를 적용하는 시점을 판단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가 지금 개입해 규제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발전하게 두고 더 큰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볼 것인지 판단 해야 한다”면서 “규제를 하고 싶어도 참으면서 기업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산업 발전 방향이나 문제점을 예상해서 미리 규제를 미리 만들어선 안된다는 얘기다. 자칫 발전 가능성을 사전 차단할 수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이다.

곽 교수는 또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창구의 일원화도 촉구했다. 그는 “신속확인제, 실증특례제, 임시허가제의 경우 도입 취지는 좋다. 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범사업 허용 범위를 넓혀주고 까다로운 절차나 과도한 의무도 축소시켜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제도를 각각 운영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태언 변호사는 국민이나 산업이 아닌 정부를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각 정부 부처 내에 규제를 무작위로 양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부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입법 투명성을 높여 정부가 어떤 법을 어떤 이유로 어떻게 논의했는지 공공데이터로 공개토록 해야 한다. 법률 준비를 위해 담당 실무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추후 재개정 또는 폐지 시에 검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함부로 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선진국들처럼 국회가 법률에 구체적인 요건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정부에 위임하는 부분을 축소하는 등 입법 심의를 강화하고, 국회의원들의 심의 시간을 측정해 졸속 입법을 방지해야 한다고 구 변호사는 촉구했다.

이외에도 법령에서 ‘기타, 등, 그밖에’가 들어간 문장을 일괄 삭제한 뒤 필요한 규정은 정부가 입증해 선별적으로 살리거나, ‘제로페이’, ‘따릉이’ 등과 같이 정부가 직접 공급자가 돼 민간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네거티브 규제를 앞당기는 대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