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최고 수준 근로시간…유연근무제 확대로 단축해야"[노동개혁 좌담회]③

by윤종성 기자
2023.02.20 05:03:10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세계 추세인데
강성 노조 호봉제 고수하며 '역행' 눈살"
"정규직 전환 어렵고, 대·중기 격차 커
직무급·원하청 상생협의체 확산 필요해

[진행= 윤종성 경제정책부장, 정리= 최정훈 기자] 이데일리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성공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공약을 설계한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노동 국정과제에 관여했던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박근혜 정부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낸 이근면 일자리연대 고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함께 했다.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②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에서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노동개혁 과제 중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게 주52시간제 유연화다. 정부의 추진 방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정승국=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향하는 탈(脫) 포드주의 이후 기업의 생산과 수요 변동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게 현대 생산관리의 특징이다. 그런데 주52시간제가 너무 성급하게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수요 변동이 빠르게 진행되는 중소기업부터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 관료들도 성급한 추진이었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일주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일본은 월 단위로,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연장근로 관리가 아니라 근로시간 자체를 연 단위나 6개월로 관리하는 게 보편적이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유연화는 우리나라가 늦게 착수한 편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유럽 국가들은 주 최대 근로시간이나 월 최대 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규정 대신 11시간 연속휴식 조건을 규정했는데, 주 최대 근로시간을 명시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 대표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지금처럼 과반수 노조가 단독으로 대표하는 방식에서 분권화하고, 소집단 직군도 반영할 수 있도록 개혁해 근로시간 선택폭을 확대해야 한다.

△이근면= 근로시간보다 중요한 건 생산성이다. 근로를 시간 측면이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장시간 근로시간을 얘기하면서 최하 수준의 생산성에는 입을 다문다. 연구개발 직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벤처기업은 하지 말라는 뜻과 같다. 업종이나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법 적용은 문제가 있다. 자영업에게도 52시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작업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일부 사업장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얘기하면서 생산성을 얘기하지 않는다. 한 시간에 한 개를 만드는 사람과 한 시간에 두 개 만드는 사람을 똑같은 52시간으로 규제할 수 없다. 고강도 노동에 한정해서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나머지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다변화 같은 방식은 판정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무원이 더 생기고 국민의 부담이 늘어날 뿐이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에서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근로시간을 줄일방법은 없나.

△유길상=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빨리빨리 문화로 생산성이 낮은 부분을 극복했다. 다만 큰 규모의 제조업 등은 선진국의 80~90%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은 여전히 절반 이하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과로를 하더라도 투입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집중해서 하고 충분히 쉬는 방식이다.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창의성도 발휘할 수 없다. 창의성을 발휘하면 일만 더 하고, 보상은 똑같이 받는 게 현실이다. 연간 총근로시간 단축도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이 경쟁하는 시대다. 인건비가 많이 오르고, 시간의 규제 등 노동 규제가 많을수록 사람을 덜 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로봇 장비 세계 1위에 걸맞게 일자리 창출력이 가장 낮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다. 선진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개인 사무실을 두고 짧은 시간 근로해서 성과를 낸다.

△정승국= 근로시간만 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총근로시간은 1928시간 정도로 선진국과 꽤 많이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연차 휴가를 잘 사용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연가보상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연장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불필요한 추가 근로를 하는 사업장도 많다.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보수적인 직장 문화로 일이 없는데도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게 근로시간을 단축할 방법이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수요가 없어도 하루에 기본 8시간은 일을 해야 하지만, 도입하면 하루 6시간 근무도 가능하다. 또 시간제 근로자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럽의 근로시간이 낮은 배경은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것이 한몫 했다. 일본도 시간제 근로자의 사용 비중이 크다.

△이근면= 연차휴가 사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의무화가 되면 일자리가 5% 이상 더 생길 것으로 추산된다. 연차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빈 자리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일자리라고 여겨지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휴가 사용을 의무화하면 적어도 40만~50만개의 일자리가 더 생길 수 있다. 연가보상비를 받으려고 휴가를 안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소수의 귀족노조만 누리는 예택이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에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현재 연공급제 임금 체계의 문제점과 이상적인 임금체계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이근면
= 임금체계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맞다. 원래 급여는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이라는 생활급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과거엔 숙련도가 문제였기 때문에 오래 일한 사람에게 임금을 더 주는 문화가 됐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에 필요한 돈이 늘어나니 보상해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시장 자체가 바뀌었다. 근로자들은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꿈을 꾸고, 사용자는 호봉제를 보장할 이유도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임금체계를 강제하지 말고 노사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정부에서 강제하려고 하면 노조는 단체이고 사용자는 개인이기 때문에 균형이 쏠린다.

대부분의 임금체계는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가는 추세다. 기업 자율에 맡기면 재택근무 등 활성화를 하면서 성과급과 직무급 등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 전 세계로 노동시장이 개방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호봉제를 유지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다.

△유길상= 기업의 노동비용과 근로자의 근로소득이 되는 임금의 양면을 균형있게 봐야 한다. 기업의 이상적인 임금체계는 좋은 인력을 유입하도록 하고, 채용 후 업무에 몰입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근로자에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역량과 성과가 있으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임금체계가 공정하고 이상적이다. 공정한 평가와 보상 외에 다른 잣대가 들어오면 공정성은 수긍하기 어려워진다. 세계적인 국가들과 기업들 공통적으로 직무역량과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마련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위기 징후는 임금체계의 후진성에 비롯된 게 크다.

△정승국= 유럽과 미국, 하물며 중국도 직무급제다. 일본은 직능급이라고 해서 숙련도에 보상한다. 우리니라는 1987년 이후 기본적인 근대적 노동의 특징을 기업에 실현하지 못했다. 특히 금융 부문 등에서 노조가 강력하게 수호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연공급이 유지되면서 근로자가 숙련도를 높이는 노력을 하지 않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연공급 비중이 크면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자동화와 외주화가 빈번해지고, 중고령자의 조기퇴직도 더 늘었다. 이에 노조가 연공급을 강력하게 수호하는 여러 업종에 개입하려는 것이다.

노조가 강하지 않은 곳은 이미 자기 산업의 특성과 직종 등에 따라 각각 이상적인 임금체계를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다국적 기업은 상당수가 직무급을 도입했고, 우리나라 기업 중 글로벌화된 기업도 직무급이다. IT 업체는 연공급이 하나도 없고 숙련급적 체계가 많다. 대졸 화이트칼라는 성과주의적 임금체계가 꽤 확산해 있다. 현재 공공부문은 기획재정부가 경영평가라는 수단을 활용해 직무급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에서 이근면 일자리연대 고문이 발언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이데일리 노동개혁 좌담회]④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