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역주행에 '1일 3깡'까지…월드스타 비도 '깡형' 만든 '밈' 권력

by김보영 기자
2020.05.26 07:21:21

비, '놀면 뭐하니?'에서 '깡' 언급…최고 11.1% 화제
'깡', 2020년 패러디 요소로 재발견…각종 신조어 양산
SNS·댓글로 '밈' 권력 극대화…"방송사 역할 중요"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지난 16일 방송된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가수 비(본명 정지훈)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가 3년 전 발매한 곡 ‘깡’이 뒤늦게 역주행 열풍을 일으키면서 인터넷상 뜨거운 키워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비의 경우가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밈’(MEME) 현상을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깡’뿐만이 아니다. 영화 ‘타짜’의 곽철용 캐릭터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김응수, ‘사딸라’를 외치는 배우 김영철,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 등 과거 소수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만 소비되던 온라인 콘텐츠가 어느새 TV·광고까지 진출하며 문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유튜브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달로 디지털 쌍방향 소통이 일반화되면서 소비자의 권력과 적극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신선함과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에 의해 세대와 시대를 초월한 콘텐츠들이 재발굴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것이며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자 이를 적극 수용하는 방송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비는 지난 16일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최근 인터넷을 강타한 ‘깡’의 역주행 인기와 이 노래를 둘러싼 누리꾼들의 그간 궁금증에 직접 답했다. 비는 “1일 1깡은 모자라다. 주중에는 3깡, 주말에는 7깡을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가 하면, 자칫 기분이 상할 수 있을 부정적인 댓글 피드백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팬들과 타협점을 찾고 즐기려는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했다. 이날 방송 시청률은 전주(8.3%) 대비 소폭 상승한 8.5%(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를 기록했고, ‘깡’ 무대를 즉석에서 선보이는 장면이 11.1%로 ‘최고의 1분’을 장식했다.

‘깡’은 비가 2017년 12월 발매한 앨범 ‘마이 라이프 애(愛)’의 타이틀곡이다. 힙합, R&B를 결합한 멜로디와 자신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가사가 특징이다. 하지만 발매 당시에는 “10년이나 지났는데도 자신의 전성기 시절 감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단의 혹평과 함께 대중에게도 외면받았다.

그런 비운의 곡 ‘깡’이 3년이 지나 2020년이 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의 혹평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패러디·재미 요소로 부각돼 관련 신조어까지 양산되는 등 하나의 온라인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하루에 몇 번 씩 ‘깡’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행위라는 의미의 ‘1일 N깡’, 비의 실패곡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을 뜻하는 ‘깡니버스’, ‘깡’을 시청하다 결국 그 매력에 빠져버린 사람들을 지칭하는 ‘깡팸’ 등과 같은 용어가 대표적이다. 뜻하지 않은 역주행에 ‘깡’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는 최근 850만회를 돌파하는가 하면, 관련 댓글도 10만개 가까이 달렸다. ‘깡’의 안무를 커버한 영상 등 2차 콘텐츠들도 조회수 200만회를 거뜬히 넘길 정도로 화제라 ‘깡’의 화제성에 기대 돈을 번다는 ‘깡 코인’이란 신조어까지 나왔을 정도다.



자신을 ‘깡러’(깡을 시청하는 사람)라고 지칭한 대학생 김빛나(24)씨는 “처음에는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접했지만, 지금은 댓글 반응과 패러디 영상을 보는 재미로 직접 검색해 찾아보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인터넷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깡’이란 문화에 해당 아티스트와 방송사가 직접 답하니 신기하고 뿌듯했다. 어머니도 방송을 챙겨보고 ‘깡팸’이 되셨다”고 말했다.

‘깡’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사진=레인컴퍼니)
전문가들은 ‘깡’의 역주행을 ‘밈’이란 현상에 빗대 설명하고 있다. ‘밈’이란 영국의 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 처음 소개된 용어다. 생물학적 유전자와 별개로 뇌와 뇌를 통해 복제되는 ‘문화적 유전자’ 단위를 지칭한다. 최근 들어서는 온라인상에 유행처럼 떠도는 각종 사진과 동영상, 신조어들이 널리 확산되는 현상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인다.

정덕현 평론가는 “‘깡’뿐 아니라 올해 초 가수 양준일 신드롬을 비롯해 영화 ‘타짜’ 속 곽철용의 ‘묻고 더블로 가’, ‘아무노래 챌린지’ 등 최근 대중문화를 주름 잡은 유행어와 아티스트들이 전부 ‘밈’ 권력에 의해 생겨난 현상”이라며 “이는 각종 SNS의 발달로 정보의 발굴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과거 흘려보내버린 콘텐츠를 재발견해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에 보람과 흥미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빠르게 포착해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방송사들의 행보도 중요하다”며 “기성 문화와 인터넷 하위문화 간 지나친 괴리감으로 세대 단절이 일어날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할 창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헌식 평론가는 “실시간 댓글 문화의 정착도 ‘밈’ 권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며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밈도 다른 누리꾼이 댓글로 풀어놓은 해석과 설명을 통해 충분히 학습 가능해졌다. ‘깡’과 관련한 각종 신조어가 많이 탄생할 수 있던 것도 댓글 반응을 즐겨 읽고 함께 소통하려는 누리꾼들의 특성이 낳은 파생 효과”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밈’ 권력이 단순히 인터넷과 방송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을 넘어 광고 출연 등 직접적인 마케팅 효과까지 누릴 기회가 된 만큼 이를 활용하는 연예인들의 역량도 못지 않게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드라마 ‘야인시대’ 속 ‘사딸라’란 대사로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게 된 배우 김영철은 이 유행어 하나로 버거킹 광고에 출연했다. 김응수 역시 ‘타짜’ 속 곽철용의 명대사로 광고계 러브콜만 수십번 받았다.

강태규 평론가는 “월드스타 비가 ‘깡형’이란 친숙한 애칭을 얻고 제2의 전성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밈’은 스타에게 또 다른 기회를 마련해줄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적절히 활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스타들의 역할과 센스도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