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KT 이사회, 구현모·박윤영 두고 투표..후계구도 없었다

by김현아 기자
2019.12.29 03:59:13

회장후보심사위, 1차 4명 탈락·2차 3명 탈락
황 회장 밀어주기 논란으로 재투표..이사회, 만장일치로 구현모 후보 결정
황창규 회장 압력도, 정치권 외압도 없었다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지난 27일, KT 이사회가 전원합의로 구현모 KT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확정했다. 11년 만에 KT 출신이 국내 최대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의 CEO로 사실상 선출된 것이다.

구현모 후보로 정해지자 KT 안팎에서는 ICT 분야 전문성과 미래 KT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전략을 가진 인물이 됐다는 평이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황창규 회장때 고속 승진을 했다는 점을 들어 적폐 경영의 후계 구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데일리 취재 결과, 이날 오전 9시부터 3시 30분경까지 진행된 회장후보심사위원회와 이사회는 철저히 미리 합의된 룰에 따라 9명의 후보자를 1명으로 압축해 간 것으로 확인됐다.

회장후보심사위원회에서 구현모·박윤영 등 2명의 후보자를 압축해 이사회에 올렸고 이사회에서 두 차례의 투표와 치열한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구현모 후보로 결정했다.

27일 오전 9시경부터 전날 면접을 본 9명의 후보자에 대한 회장후보심사위 평가가 시작됐다. 회장후보심사위는 김종구 위원장 등 8명의 사외이사와 1명의 사내이사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전날 면접을 본 9명의 후보자를 투표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미리 정한 룰에 따라 김종구 위원장을 제외한 8명만 투표에 참여했다.

첫번 째 투표는 안 돼야 할 사람을 6명씩 적는 방식을 택했는데, 여기서 많은 표가 나온 4명을 먼저 제외했다고 한다. 그때 탈락한 사람이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전 KT R&D 부문장),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전 KT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 최두환 포스코ICT 자문역(전 KT 종합기술원장)이다.

이후 회장후보심사위 이사 8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적합 후보를 1명씩 다시 적었고 많이 나온 후보 3명을 배제했다. 이동면 KT 미래플랫폼사업부문장(사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사장, 김태호 전 서울교통공사 사장(전 KT IT기획실장)이다. 이런 방식으로 후보자 9명 중 7명이 탈락하고 구현모 KT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과 박윤영 기업사업부문장(부사장)이 이사회에 회장 후보로 올라가게 됐다.



KT 사외이사 A씨는 “룰 세팅이 미리 된 상태에서 진행해 이사 중 누구도 누가 될지 몰랐다”면서 “9명의 회장 후보자들에 대해 이사들이 보는 시각이 다 다르더라”고 말했다.

이사회에서는 김종구 회장후보심사위원회 위원장 겸 이사회 의장도 투표에 참여해 9명이 투표했다. 황창규 회장과 후보자였던 이동면 사장은 참석하지도,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사들은 두 후보를 두고 여러 논의를 진행했고 두 차례의 투표 끝에 만장일치로 구현모 사장을 회장 후보로 확정했다.

첫 투표 때는 구현모 4표·박윤영 5표로 박 부사장이 1표 앞섰지만, 이사 몇 명이 황 회장 측의 박 부사장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하자 두 번째 투표에서 구현모 5표·박윤영 4표로 구현모 사장이 1표 앞섰고, 이후 이사들이 구현모 사장을 최종 후보로 확정하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해 투표를 종료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다만, CEO 후보 추천 과정에 황창규 회장 압력은 없었다는 게 김종구 이사회 의장 설명이다.

김종구 의장은 “구체적인 표가 어떻게 됐는 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이사회에 두 후보가 올라갔고 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그는 “박윤영, 구현모 씨 중 어떤 분이 황 회장 분이고 아니고 한가”라고 되물으면서 “현재 CEO는 이사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하도 말이 많아서. 이사들의 분위기가 그랬다”고 부연했다.

A 이사는 “황 회장의 뜻이 있었다면 사내이사 한 분이 (9명의 이사회 참석자 중) 9분의 1만큼의 영향력이었을 뿐이다. 압축과정에서 팽팽하게 조율됐던 사람들이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내부 사람(임원)만 남는 걸 걱정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청와대 등 정치권의 압력도 없었다. 정치적 위험성도 고려했지만 구현모 후보를 확정한 것은 KT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면 정치적 위험성도 끌고 가자는 취지였다는 게 이사들 얘기다. 이사회가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아니라 우직한 판단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직원 1만8000여명이 가입한 KT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11년 만에 내부 출신 CEO 후보자가 선임된 것을 환영한다”며 “사심을 배제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오로지 전문성과 역량만으로 KT의 미래를 이끌어갈 CEO를 선임하기 위해 노력한 이사회의 노고에도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