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냅타임] '군 인권' 변화, 수 없는 요구와 투쟁의 결실

by정성광 기자
2019.01.21 00:10:00

김형남 군인권센터 정책기획팀장 인터뷰

“인권이라는 것, 사람의 권리라는 게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매 순간 싸워서 얻어 가야 하고,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군 인권도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더 없이 신성하고 소중하지만 쟁취하는 과정까지 평화롭지는 않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정책기획팀장은 어떤 권리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인권이 되기까지 수 없는 요구와 투쟁이 따른다고 했다. 그가 학생이 누려야 할 권리, 병사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활동한 모든 순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해 기무사 문건 폭로·대체복무제 논란 등 군 조직 내부의 기강 해이와 비리를 폭로하는 사건들이 이슈로 떠올라 군 인권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았다. 군인권센터는 이 사건들을 처음 접해 공론장을 만들어 낸 비영리단체다. 김 팀장은 인권 문제와 관련한 정책 입안 및 입법 활동을 기획하며 최전방에서는 군 인권을 위해 척후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스냅타임이 그를 만나 군 인권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사진=스냅타임) 김형남 군인권 센터 정책팀장이 스냅타임과의 인터뷰 중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참아야 하는 조직 문화를 바꾸고 싶었다"

김 팀장은 대학생 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이 인권 활동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인권 활동중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상대방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 지금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군 인권을 위해 뛰어든 건 군 생활 중 우연히 같은 부대에서 인권침해를 겪는 병사들을 도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간부였던 가해자를 대상으로 고소를 진행하는 동안 병사들의 군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군 문화를 개선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히려 피해 병사들이 “조금 참을 걸 괜히 문제를 제기해 사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아 후회한다”고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김 팀장은 "그때 문득 많은 이십 대 남성들이 군대에서 그냥 참고 넘어가면 된다는 조직 문화를 배운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20년, 30년 뒤에 기성세대가 된다면 이 사회의 조직문화는 절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군인권센터 제공)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형남 군인권센터 정책기획팀장

"군내 사망 사건은 아무리 잘 해결해도 한계가 있다"

그는 센터에 들어와 처음 지원했던 ‘전방 GP 박 일병 자살 사건’을 가장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육군 6사단 7연대 소속 GP(휴전선 감시 초소)에서 근무하던 박씨가 휴가 하루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피해자인 박 일병은 제모 씨 등 선임병 4명으로부터 상습적인 구타·가혹행위와 인격모독, 가족에 대한 희롱까지 들으면서 폐쇄적인 곳에서 두 달간 지내야 했다.



김 팀장은 “인권침해 피해 사례가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이어지면서 아무리 사건을 잘 해결하고 진상 규명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상처받은 피해자를 어떻게 상담할 것인지, 인권활동가가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했다.

(사진=군인권센터 제공)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 활동을 하고있다

"다양한 방해로 힘들 때도 있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활동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압력과 방해, 편견 탓에 힘들 때도 있다. 지난 2017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을 담당할 때는 보수 단체에서 직접 센터로 찾아와 기자회견문을 불태우며 시위를 했고, 항문성교를 조장하기 위해 활동하는 곳이 아니냐는 전화를 수백 통 받기도 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으로 성소수자 간부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동성 간 성관계 여부를 알아내 추행죄로 엮어 22명을 형사입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 군형법 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힘든 과정에서도 군이 변화할 가능성을 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온라인 등 곳곳에서 응원하며 후원을 보내왔고 한 달 만에 700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 모였다. 김 팀장은 저항과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못지 않게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도 점점 진보해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 군인권센터 제공)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 규탄집회에서 발언하는 김형남 팀장

"군은 모두와 연결된 공간, 시민들의 참여가 변화"

김 팀장은 군의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군은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집단이고 또 자식, 형제, 친구로 이어지기에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연관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특수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군은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조직인데 다른 사람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으면 다른 사람을 지킬 마음이 들겠는가”라며 군대가 철책 안의 왕국처럼 폐쇄돼 있을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열린 공간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즈음 김 팀장은 "앞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우리 군을 더욱 강하고 건강한 곳으로, 나아가 우리 사회를 좀 더 건강하고 진보적인 곳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라며 군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