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인 듯 노조 아닌 '노동연대'…배달대행기사들이 모인 까닭은?

by김소연 기자
2019.03.27 00:01:08

플랫폼노동자연대 출범, 사회안전망 확보 요구
'노동자 아닌 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통계도 없어
4대보험 가입·산재처리도 어려워…노동기본권 보장

플랫폼노동연대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플랫폼노동연대)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구성원들이 법적으로 노동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탓에 ‘노동연대’라는 이름을 달고 시민단체로 위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플랫폼 노동자 단체 얘기다.

플랫폼 노동자는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기반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배달앱·승차공유앱·대리운전앱·가사도우미앱 등을 통해 건당 일정 보수를 받는 배달 대행기사·대리운전기사·가사도우미 등이 그들이다. 외형상 사업자지만 고용주가 있고 임금을 받고 정해진 근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노동자다.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위원장은 24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요구할 부분이 있으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촉구하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노조가 아닌 연대로 명칭을 정한 이유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플랫폼노동자를 특수고용노동자(특고)로 보고 노동조합 인정을 해주지 않아 ‘노동연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정해진 사업장으로 출퇴근하는 표준화·정형화된 현재까지의 근로환경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노동자는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중간지대 프리랜서다. ‘디지털 특고’라고 불린다. 일례로 배달 대행기사는 배달대행업체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한다. 하지만 배달대행업체는 배달대행 기사들을 교육하고 관리한다. 배달대행 기사들은 자영업자와 다르게 자신들의 업무시간과 장소, 업무 내용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배달대행 기사들은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관계법·근로기준법 등의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배달 앱을 통해 배달 대행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나도 산재처리가 어렵고 기사가 알아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사회도, 플랫폼 기업도, 정부도 보호해주지 않는다. 치료를 받는 동안 생계에 문제가 생겨도 실업급여 등을 받지 못해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난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 이원장은 현재 배달대행기사들이 플랫폼업체에게 지불하는 앱 프로그램 사용료·중개료·보험료 등이 증가하면서 배달기사의 수입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기사들은 배달 1건당 보통 3000원을 받아 300~500원을 수수료로 낸다.

한국고용정보원은 플랫폼노동 직군을 30여개로 분류했다. 플랫폼노동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플랫폼노동자를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해외에서는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을 인정하고, 플랫폼운영자를 노동법상 사용자로 인정하는 법령들을 시행했거나 준비 중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차량 공유서비스인 우버택시 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플랫폼노동연대는 공정 수수료 책정 기준을 마련하고 4대 보험 적용을 위한 법·제도 개선 등에 나설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플랫폼노동자도 노동법·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노동자로 인정 받길 바란다.

현재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앞서 국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고자 한다. 이때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원칙은 ‘노동자 누구나 어떤 차별도 없이 스스로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위원장은 관련 법이 개정되고 플랫폼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받게 되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도, 자유롭게 가입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플랫폼노동자와 사용자 간 교섭도 가능해진다.

그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동안 소외된 플랫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길 바란다”며 “플랫폼노동자도 한국사회 노동자들에게 부여된 보편적 권리인 인권과 노동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