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희극인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
by김현식 기자
2020.11.04 06:00:00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저는 남을 웃길 수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해요.” 지난 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개그우먼 고 박지선이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 말대로 박지선은 2007년 KBS 22기 공채로 개그맨 데뷔를 한 뒤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활동하며 대중에게 웃음을 안겨왔다.
그런 그가 돌연 자택에서 모친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불과 1개월여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제작발표회 진행을 맡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쉽사리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특히 대중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 건 그가 평소 햇빛 알레르기 등 극심한 피부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박지선은 얼마 전부터 활동을 쉬고 있었고, 모친의 간호를 받으며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부 질환으로 인한 박지선의 고충이 이번에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는 인터뷰 등을 통해 고교 시절 받았던 여드름 치료 부작용으로 피부가 상한 탓에 분장을 한 채로 임하는 개그 코너를 하지 못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많은 이들이 그의 고충이 얼마나 큰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던 건 박지선이 힘든 내색 없이 밝은 모습으로 각종 무대에 올랐던 영향이 클 테다. 그도 그럴 것이 개그를 펼칠 수 있는 곳은 박지선에게 ‘꿈의 무대’ 그 자체였다. 고려대 교육학과에 다닌 그는 진로를 바꿔 개그계에 입문한 후 “무대 위에 섰을 때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 행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무대를 사랑하던 희극인이었다.
안타까운 건 지병으로 인한 아픔, 그리고 외모비하 ‘악플’ 등을 이겨내고 대중에게 웃음을 안겨준 그의 노력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조명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박지선처럼 자신의 아픔을 감춘 채 대중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 중인 희극인들이 존재한다. 정통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져 희극인들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 속 박지선을 애도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제는 대중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응원의 시선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