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멍든 스포츠]② 실업선수 4명 중 1명 "신체폭력 당했다"

by이석무 기자
2020.07.03 00:01:30

스포츠계 가혹행위 심각
절반 이상 "짤릴까봐 반박 못해"
선배·코치·감독 모두가 피해자
5.3% "볼·엉덩이 불쾌한 접촉도"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중 25% 이상이 신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는 국내 스포츠계에 폭력 등 가혹행위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드러낸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 사건은 오늘날 한국 스포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현실의 한 사례일 뿐이다. 26세 실업팀 남성 선수가 소속팀 감독에게 “이만큼 너희한테 지원해주는데 이거 못 하면 패배자다, 그럼 병신이지. 어디 가서 이 연봉 받고 일했겠냐. 우리니까 너희가 이 정도 연봉 받으면서 일하는 거다”라는 언어폭력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30세 실업팀 여성 선수는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해 문제 제기를 하고, 호소문을 써도 생각보다 달라지는 게 없다. 오히려 우리가 운동하는 데 있어서 더 제재를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온다”며 “협회 쪽이 그쪽 분들이라서, 협회 쪽에서 도움을 전혀 못 받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발표한 스포츠 현장의 인권실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성인까지 스포츠 현장에서 총체적인 인권 유린이 이어졌다.

특히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는 프로나 실업팀 선수가 되면 심각성은 훨씬 더했다. 지난해 7~8월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56개 종목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바일 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 폭력에 노출된 채 운동을 하고 있었다. 조사에 응답한 1251명 가운데 26.1%에 해당하는 326명이 ‘신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경험한 신체폭력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머리박기, 엎드려 뻗치기 등이 106명(8.5%), 계획에도 없는 과도한 훈련이 89명(7.1%), 손이나 발을 이용한 구타 66명(5.3%), 운동기구나 도구를 이용한 구타 57명(4.7%) 순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 경험이 있는 선수들의 경험 빈도는 ‘1년에 1~2회’가 45.6%로 가장 높았다. ‘거의 매일’이라고 답한 피해자도 8.2%나 됐다. 신체폭력의 가해자는 선배 운동선수가 52.2%, 코치 42.3%, 감독 37.9% 순이었다.

운동이 직업인 실업 선수들의 경우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팀이 해체되거나 보복 또는 불이익을 받아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실제로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 가운데 67.0%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처를 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절반에 가까운 선수들이 ‘보복이 무섭거나’(26.4%) ‘상대방이 불이익을 줄까 걱정돼서’(23.1%)라고 답했다.

실업 선수들의 5.3%는 ‘누군가 나에게 운동 중 불쾌할 정도의 불필요한 신체접촉(손, 볼, 어깨, 허벅지, 엉덩이)을 하는 행위’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자선수(2.2%)보다는 여자선수(8.4%)들이 더 많이 노출됐다.

그 밖에도 실업 선수 대부분은 욕, 비난, 협박 등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문에 응한 선수 전체 선수 가운데 424명(33.9%)이 ‘있다’고 답했다. 여자선수의 경우 230명(37.3%)으로 194명(30.5%)인 남자선수보다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조사 당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선수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상당수 선수들은 ‘어차피 이런 조사를 매번 해도 제대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체육계의 관행과 시스템, 그리고 일부 지도자들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