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포트③]'밀회' 안판석 PD, 그 지독한 리얼리티를 위하여

by강민정 기자
2014.05.13 07:15:15

바스트-풀-클로즈업 샷 한번에..원테이크 스타일의 연출
모든 순간 '너라면'의 입장으로..미학보다 삶으로 접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은 없다..때론 알맹이보다 느낌을 강조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밀회’ 스틸.(사진=JTBC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다신 볼 수 없을 작품.’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미니시리즈 ‘밀회’는 이런 드라마로 남을 것 같다. 이러한 배우의 조합도, 제작진의 의기투합도, 사회적인 트렌드도, 공감을 얻을 타이밍도, 다시 만날 순 없을테니 ‘밀회’ 같은 드라마를 또 볼 수 없다는 건 맞는 말이 분명하다.

‘밀회’의 유아인과 김희애.
20세 남자와 40세 유부녀의 사랑. 부적절한 관계가 전국 안방극장에 전해졌다. 세상 이런 ‘막장’이 어디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드라마를 제대로 보고 말해라”는 지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밀회’는 불륜을 미화했으나, 드라마라는 틀로 정당화에 성공했다. ‘밀회’를 미워하는 남자 시청자들의 논리대로 이 드라마가 스무살 여자와 마흔살 유부남의 사랑을 다뤘다 한들, 반응은 같았을 거다. 공감하며 빠졌을 사람은 존재했을 것이고, 사회적인 분위기를 흐린다는 지적도 나왔을 거다.

종합편성채널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밀회’ 스틸.(사진=JTBC 제공)
무엇이 ‘밀회’를 현실적인 드라마로 만들었을까. 왜 잘못인 줄 알면서 빠져들고, 나쁜 줄 알면서 이해됐을까. 배우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마술은 없다”고 한다. 답은 ‘밀회’의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의 지독한 리얼리티에 있었다.

‘밀회’ 김희애와 김혜은.
◇5분 안에 끝나는 ‘원 테이크’ 스타일

안판석 PD는 촬영을 빨리하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오랜 시간 필요한 작업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드라마 현장에서 3시간에 걸쳐 촬영될 시스템이 빠르면 5분 안에 끝난다고 했다. 한 신을 두고, 전체를 잡는 풀샷, 가슴 위로 잡는 바스트샷, 얼굴 등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는 클로즈업 샷 등을 나누어 찍지 않기 때문이었다.

극중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 분)의 친구 박다미로 열연했던 경수진, 오혜원(김희애 분)의 남편이자 서한예술재단 피아노학과 교수 강준형을 연기한 박혁권 등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원 테이크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애와 안판석PD.
배우들은 같은 장면이라도 여러 번에 걸쳐 연기를 한다. 그것이 NG가 아닌 ‘컷’을 듣기 위한 몇번의 시행착오가 아닌, 제각각의 방향에서 배우들의 모습과 배경의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안판석 PD의 경우 이 같은 부분을 한번의 과정으로 최소화해 배우들의 연기가 매신 마다 딱 하나의 진짜만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안판석 PD와 오래도록 함께 팀을 이뤄온 촬영 감독들은 이러한 호흡에 맞춰 배우들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안판석PD와 경수진.
◇‘너라면’, 안판석 PD가 사랑한 말

안판석 PD는 카메라 밖에서도 배우들과의 대화가 많은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배우들과 나누는 대화의 절반은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라는 데서 출발한다. 눈물을 보이고 소리를 치는 감정신에서만이 나오는 캐릭터 이입이 아니다. 매 순간 그렇다.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이러한 신에서도 ‘너라면 어떻게 보여질 것 같냐’는 생각을 많이 하도록 도왔다. 보통 드라마에선 입에 음식물을 넣고 이야기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안 감독님은 삶이 그런 걸, 왜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 여기느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밀회’.
극중 다미와 장호(최태환 분)가 선재의 집을 찾아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느 드라마 속 식탁 풍경과 다른 느낌었던 건 바로 리얼리티를 위한 작은 정성 때문이었을 거다. 다미가 선재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노선표를 쳐다보는 일이 없고,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절대 없었던 건 그만큼 두 사람이 친구로 지내온 시간이 많았음을 의미하는 현실을 반영한 연출이었다. 안판석 PD의 리얼리티에 대한 디테일은 이렇듯 놀랄 만큼 치밀했다.

안판석 PD와 장현성.
◇보여주기 위한 연출, 모두 거짓

보여주기 위한 화면을 연출하지 않은 안판석 PD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극중 혜원이 궁지로 몰릴 수록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혜원의 사무실에 찾아와 선재와 그만 끝내라고 설득하기도 하며 친구들이 혜원의 곁을 지켜줬다. 드라마를 집중해서 봤던 시청자라면 이러한 장면에서 배우들 간 나누는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일반적으로 A와 B가 대화를 나누는 신이라면 두 사람을 가까이서 비춰주고 대화에 집중했을 법하지만 안판석 PD는 이를 풀샷으로 비춰 전체적인 그림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리는 화면에서 멀어졌지만 시청자들은 물고 뜯는 인간 관계가 판치는 서한예술재단 바닥에서도 친밀함, 진심, 이러한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안판석 PD의 촬영장 모습.
‘밀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살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 늘 매우 중요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너를 생각한다, 너가 나를 웃게 한다, 이런 사소한 감정을 주고 받는 가벼운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모습을 거부감 없이 보여주려면 대화의 알맹이보단 둘 사이를 둘러싼 공기의 온도가 중요한 거다. 안 감독님은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고 전했다.

‘밀회’는 이제 마지막 한 회 만을 남겨두고 있다. 12일 방송된 15회에서 혜원과 선재가 보란듯이 데이트를 즐기고, 혜원은 보란듯이 검찰 압수수색 등에 맞서 정면 돌파로 승부하고 있다. 16회 예고편에서 푸른 수의를 입고 법정에서 울먹이며 호소하는 혜원의 모습, 이를 지켜보는 선재, 두 사람 사이로 “비행기 타고 날라버리게”라는 선재의 목소리가 오버랩되며 도대체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증을 한껏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