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서임 의미와 향후 천주교 방향은?

by김용운 기자
2014.01.13 01:25:35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추기경 서임
사제들의 정치적 사회적 개입에 비판적
진보적인 교황 메시지 어떻게 전할지 주목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이 된 염수정 대주교. 추기경 서임식은 오는 2월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다.(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교황청이 12일 새롭게 서임된 추기경 19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72)가 포함됐다.

◇서울대교구 ·비유학파 출신 첫 추기경

염 대주교는 오는 2월 아시아 첫 추기경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1922~2009)과 이후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 추기경이 된다. 또한 서울대교구 교구장 출신 첫 추기경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은 각각 마산교구와 청주교구 주교였을 때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서울대교구에는 229개 성당이 속해 있으며 신자 수는 140만 명에 이른다. 가톨릭의 수 백 개 교구 중에서도 규모 면으로 손꼽힌다. 염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은 서울대교구가 규모뿐만 아니라 전 세계 천주교 내에서 그 위상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염 대주교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첫 추기경이기도 하다. 18세기부터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한국의 천주교가 내부의 사제 육성 시스템만으로 추기경을 배출한 것도 각별하다.

◇ 사제들의 정치적·사회적 개입에 비판적

한편 이번 교황청의 추기경 서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즉위 후 첫 추기경 지명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입성과 동시에 가톨릭 내부의 분위기를 쇄신하며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비판할 만큼 전임 베네딕트 16세 교황과는 달리 진보적인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천주교 내부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추기경 임명이 다가오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주교 중에서 추기경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염 대주교의 서임으로 천주교 내부의 진보적인 성직자나 신자들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염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처럼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크게 나타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염 대주교는 그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사회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천주교내 흐름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그어왔다.

이런 염 대주교의 성향은 지난해 11월 신앙의 해 폐막미사 강론에서 잘 드러났다. 염 대주교는 당시 “그리스도인에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빌라도와 같은 행동, 손을 씻으며 뒤로 물러나는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만 합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가톨릭교회 교리서(244항)에서는 사제가 직접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 메시지 어떻게 전할지 관심

염 대주교는 대신 교회의 예언적인 역할보다는 생명운동과 선교에 더 중점을 두었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란 당시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최근 생명 경시 풍조에 더 이상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우리의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유지를 따르는 사단법인 바보의나눔 과 옹기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염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서임되면 우선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방한 당시 김대건 신부 등 103위 성인시성 이후 없었던 한국 천주교외 성인 시복시성 작업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더불어 한국 천주교 순교자들의 새로운 성인 시성식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소문역사공원 내 천주교 성지화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염 대주교가 추기경이 되면 교회의 역대 어떤 교황보다 현실 참여를 역설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점차 보수화 되어가는 한국 가톨릭 내부에 어떻게 전할지가 관심이다. 추기경은 교황의 지침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즉위 후 자신의 첫 번째 사목권고인 ‘복음의 기쁨’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온한 성전 안에 머물며 고립되는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 잘못을 침묵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