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비료포대’ 썰매, 그리고 겨울

by임종윤 기자
2006.12.06 10:00:00

[포인트아이 안병익 대표]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라도 흩날리는 날이면 어릴 적 시골에서 뛰어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 오르곤 한다.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나면 흰색 물감으로 색칠이라도 한 듯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뛰어다니며 눈 사람도 만들고 눈 싸움도 하면서 추운 줄도 모르고 눈 오는 날은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런 눈 오는 날 빼먹지 않고 즐겨 했던 것이 바로 ‘비료포대’썰매다.

눈이 많이 쌓인 날에는 시골에서 흔하디 흔한 비료포대를 하나씩 가지고 모두들 동산에 올라갔다. 가지고 간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동산 언덕 위에서 아래쪽으로 줄지어 비료포대 썰매를 타곤 하였다. 타고 내려올 때의 그 짜릿함은 다른 어떤 놀이보다도 재미가 있어서 한번 시작하면 힘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함께 반나절은 족히 놀았던 것 같다.

이런 비료포대 썰매의 장점은 재질이 아주 가벼워서 내려왔다가 올라 갈 때 힘이 덜 든다는 것이다. 지금의 스키장처럼 ‘리프트’나 ‘곤돌라’가 없기에 타고 내려오면 순전히 걸어서 동산을 다시 올라가야 했다. 동산을 올라가는 데는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내려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타곤 하였다.

비료포대 썰매의 결정적인 단점은 타는 곳이 스키 슬로프처럼 잘 다듬어진 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눈이 쌓이고 난 후 그냥 나무가 거의 없는 동산이나 언덕에서 타기 때문에 눈 속에 잘려진 나무 그루터기나 돌 뿌리 같은 것들이 그대로 있었다. 힘차게 타고 내려오다가 그런 것들에 걸리면 여지 없이 엉덩이를 심하게 부딪히곤 하였다. 비료포대가 찢어질 정도의 그 아픔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재미있게 타곤 하였다.



필자의 고향은 지금은 고속전철 천안아산 역사가 들어서 있는 충남 천안시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만해도 말이 시(市)이지 영락없는 시골 오지였다. 내 기억에 전기가 여덟 살 때 들어 왔고 TV를 보기 시작한 것도 아홉 살이 훨씬 넘어서인 것 같다. 그 당시 초등학교는 시내에 있었다. 그래서 매일 왕복 8Km를 걸어서 등×하교를 하곤 했다. 지금 자라서는 별거 아닌 거리지만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가 너무너무 멀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등×하교 길은 친구들과의 또 다른 놀이터였다.

봄에는 들판을 뛰어 다니며 꽃으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고, 여름엔 근처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잎을 따고 잠자리를 따라 다니고, 겨울에 눈이라도 쌓이면 계속 미끄럼을 타면서 학교를 다니곤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 진다.

비료포대 썰매는 지금의 ‘스노우보드’와는 달리 스스로 걸어서 언덕에 올라가야 하는 ‘성실함’과 자칫 나무 그루터기나 돌 뿌리에 걸려 아플 수 도 있음을 알면서 타야 되는 ‘순수함’이 있다. 그 때를 떠올리며 지금의 우리들은 ‘성실’하게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당연히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순수함’을 부정 하지는 않는지 되새겨 본다.

올해도 겨울은 여지 없이 찾아 왔다. 어릴 적 비료포대 썰매를 지치도록 타고 내려와 방 가운데 자리잡은 화로에다가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서 ‘호호’ 불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먹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 ‘성실함’과 ‘순수함’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약력>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박사 수료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SEIT 수료
KT연구소
LBS산업협회 서비스분과 위원장
한국공간정보시스템학회 이사
2000년 4월 포인트아이 설립
2001년 3월 LBS플랫폼 개발
2003년 4월 KTF LBS 시스템 구축
2005년 1월 K-ways 길안내서비스
2006년 6월 코스닥증권 시장 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