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이 떠올랐다' 투혼이 육체 지배한 쿠에바스 역투
by이석무 기자
2021.10.31 18:08:57
| 31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 KT위즈 대 삼성라이온즈의 경기. 1회말 KT 선발투수 쿠에바스가 역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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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마치 최동원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KT위즈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의 투혼을 본 중계방송 캐스터는 감탄사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KT는 3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1 신한은행 SOL KBO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서 쿠에바스의 초인적인 역투에 힘입어 삼성라이온즈를 1-0으로 꺾었다.
이로써 정규리그 144경기에서 1위를 확정짓지 못했던 KT는 145번째 경기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큰 선물도 받았다.
KT가 35년 만에 열린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커)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단연 쿠에바스였다. 쿠에바스는 만화책에서나 볼 것만 같은 투혼을 발휘해 KT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짜릿한 1승을 선물했다.
쿠에바스는 지난 28일 NC다이노스전에 선발로 나와 공 108개를 던졌다. 그리고는 겨우 이틀만 쉬고 사흘 만에 선발 등판했다.
경기 전 이강철 KT 감독은 “2~3이닝 정도만 막아주면 좋겠다”고 했지만 쿠에바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99개 공을 던지면서 7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삼진은 8개자 잡았다.
외국인선수는 팀보다 개인을 더 우선시한다는 편견을 깨는 눈물겨운 호투였다. 마치 1984년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투혼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에이스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KT에서만 세 번째 시즌을 보내는 쿠에바스는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성격이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보니 좋은 구위를 가지고도 만족스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특히 이번 시즌은 쿠에바스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쿠에바스의 아버지는 코로나19로 투병한 끝에 세상을 떠났다. 타지에서 위독한 아버지를 직접 보지 못하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극심한 마음고생으로 인해 체중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이강철 감독은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쿠에바스를 위로하고 배려했다. 피말리는 순위싸움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조용히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쿠에바스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에도 충분히 시간을 줬다.
이강철 감독과 구단은 쿠에바스를 단순히 한 명의 외국인선수가 아닌 팀의 가족으로 대했다. 그런 마음에 감동한 쿠에바스는 물리적으로 공을 던지기 힘든 상태였음에도 등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7이닝 무실점이라는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후 “초반에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바꾸려고 했는데 쿠에바스의 공이 너무 좋았다”며 “결국 쿠에바스에게 오늘 경기를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쿠에바스의 투혼은 올 시즌 KT가 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 돌풍을 일으켰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쿠에바스가 잘 보여줬다.
쿠에바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틀만 쉬고 또 선발 등판한 건, 내 야구 인생 처음”이라며 “오늘 승리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만큼 휴식 시간을 얻게 됐다. 내가 가진 걸 다 쏟아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팀이 하나로 뭉쳐 좋은 경기를 했기 때문에 승리했다”며 “내 역할도 있었지만, ‘팀 KT’가 만든 승리”라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dkjdn
쿠에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기간에 동료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며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마운드에 선 뒤에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껴진다. 그 에너지가 오늘 같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그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한국시리즈에서도 내게 힘을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