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스카우트'한 로건 화이트와 김광현-양현종 미래

by정재호 기자
2014.07.01 15:44:48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로건 화이트(52·LA다저스 부회장)의 선수생활은 보잘 것 없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단 4년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투수로 뛰다 전혀 빛을 보지 못하고 일찍 은퇴로 내몰렸다.

선수의 꿈을 접기에는 많이 이른 그의 나이 만 25세 때였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인 마이너리그에서 화이트가 남들과 달랐던 점은 좌절만 하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화이트는 절망하고 있을 시간에 남들보다 재빨리 희망을 모색했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섰다. 자신이 계속 야구계에 머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스카우트라는 직업이라고 판단했고 현역은퇴 불과 1년 뒤인 1988년부터 89년까지 시애틀에서 첫 걸음마이자 가장 낮은 단계인 ‘준 스카우트’부터 일을 시작했다.

비록 스스로는 야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선수 보는 눈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듯 보인다. 남다른 재능과 노력으로 금세 해당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다.

야시엘 푸이그가 타석에서 호쾌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대번에 알아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지역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단번에 승진한 것으로 그는 오리올스에서 3년(1990-92년)을 활약한 뒤 1993년부터는 샌디에고 파드레스로 옮겨 같은 일을 맡았다.

화이트를 뺏긴 볼티모어는 그의 공백을 절감해야 했고 급기야 ‘서부해안 감독관’ 자리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화이트는 다저스로 오기 전 1995년에서 2002년까지 볼티모어의 선수 발굴과 수급에 상당한 이바지를 했다.

25살에 평생 해온 야구공을 눈물로 놓고 불과 7년 만에 일군 값진 성과로 그가 스카우트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하는 까닭이다.

화이트는 2002년 다저스로 오면서 아마추어 스카우트 및 드래프트를 사실상 총괄하는 권한을 얻었다. ‘아마추어 스카우팅 부회장(국장)’이라는 현재 직책에서 알 수 있듯 2002년부터 13년을 빠짐없이 다저스의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실질적으로 운영해왔고 여기에는 지난 2년간 다저스 성공의 근간이 됐던 국제 스카우트 시장에서의 눈부신 성과가 포함돼 있다.

화이트 시대 이후 다저스의 드래프트 1라운드 역사는 거의 실패가 없었다. ‘클레이튼 커쇼(26·LA다저스), 제임스 로니(29·탬파베이 레이스), 채드 빌링슬리(29·LA다저스), 스캇 엘버트(28), 크리스 위드로(24), 잭 리(22), 코리 시거(22)’ 등의 이름이 빛나고 있다.

이외 ‘맷 켐프(29)와 디 고든(25), 러셀 마틴(31·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조내던 브락스튼(29·신시내티 레즈)’ 등이 이른바 ‘화이트 키즈’다. 최근 4시즌 동안 그가 드래프트에서 뽑은 선수들 중 22명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제 스카우팅의 시장은 또 하나의 업적으로 류현진(27·LA다저스)과 야시엘 푸이그(23)를 비롯해 구로다 히로키(38·뉴욕 양키스), 사이토 다카시(44) 등이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선수 스카우트에 있어 다저스 구단은 화이트와 그가 직접 고용한 파트너인 밥 엥글 해외 스카우트 총괄 담당(부사장)의 말을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계 대다수 사람들의 조롱 속에도 꿋꿋이 뜻을 펼쳐 끝내 대박을 터뜨렸던 류현진과 푸이그가 결정적이었다.

화이트 국장은 당시 야구계 안에서 널리 비웃음을 샀지만 푸이그에 4200만달러를 투자해 잭팟을 안긴 주인공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한국의 류현진을 무려 6년간이나 집요하게 추적했고 그해(2012년) 가을 엥글을 고용하며 서로 확신을 굳혔다.



화이트와 엥글은 각각 류현진을 적극 지지했고 역시 총액 6200만달러를 들여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겨울에는 국제 스카우트 부서가 전력보강에 도움을 줄 쿠바유격수 알렉산데르 게레로(27)와 일본인투수 다나카 마사히로(25·뉴욕 양키스) 등 2명에 주목했다. 다만 게레로에게는 ‘예스(4년 2800만달러 계약)’라고 답한 반면 다나카에는 영입에 총력을 쏟는데 ‘노’라는 의견을 수뇌진에 전달했다.

화이트와 그의 팀은 “다나카를 에이스 감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장 1-2년은 모르겠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나카는 에이스가 아니라는 게 국제시장에서 꽤나 성공적이었던 다저스 스카우트진의 판단이었다.

이를 비웃듯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다나카지만 화이트의 안목이 맞다면 앞으로 2-3년 뒤는 또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 화이트가 1일(한국시간) 최근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조시 번스 단장을 해임한 샌디에고의 단장직 인터뷰를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화이트의 단장직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과 2010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러브콜이 왔고 2010년의 경우 뉴욕 메츠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도 군침을 흘렸지만 끝내 무산된 바 있다.

샌디에고 유력 일간지인 ‘유니온-트리뷴’에 따르면 화이트 외에 래리 베인페스트 전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과 마이크 해즌 보스턴 레드삭스 부단장 등이 인터뷰를 가져 3파전 양상을 예고하고 있다.

화이트의 경우 과거 샌디에고와 한 차례 인연이 있어 다저스 수뇌진은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닝을 마무리한 김광현이 마운드에서 뛰어 내려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제 스카우트 시장의 상황과 흐름에 정통한 화이트가 만약 샌디에고 단장으로 간다면 2014년 여름 한참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로 해외 스카우트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의 두 좌완특급 김광현(25·SK와이번스)과 양현종(26·기아 타이거스) 등의 행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목된다.

투수왕국인 다저스가 아닌 ‘리빌딩 구단’ 샌디에고라면 김광현과 양현종이 안착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미국 서부의 떠오르는 부자도시 샌디에고는 최근 ‘쿠바용병’ 오드리사메르 데스파이그네(27)를 데려와 본격 가동에 들어갔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가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이 지난 5월5월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샌디에고와 계약하고 불과 한 달 만에 빅리그로 승격, 2경기에서 ‘2승무패 평균자책점(ERA) 0.66’ 등의 불꽃투로 합격점을 넘어 강한 인상을 심고 있다.

샌디에고는 기회의 땅이라는 것이 2012년 8월 이후 ‘코리언특급’ 박찬호를 만든 피터 오말리가의 구단주 등극 이래 해외시장 개척에 관심이 지대하다.

경쟁의 측면에서는 에이스 앤드루 캐쉬너(27) 외 이렇다 할 확실한 선발투수가 없다는 게 최대 매력 포인트다.

‘타이슨 로스(26)와 이언 케네디(29), 에릭 스털츠(35)’ 등은 김광현-양현종 등이 한번 해볼 만한 상대들이고 ‘라비 얼린(23), 제시 핸(24), 버치 스미스(24)‘와 같은 영건과 대결에서는 일정부분 우위가 예상된다.

6년간의 류현진 스카우트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누구보다 상당한 ‘투수출신’ 화이트의 혹시 있을지 모를 이동이 ‘제2의 류현진’을 꿈꾸는 한국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없지는 않아 야구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