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일 만에 '준우승 전문' 꼬리표 뗀 김지영 "보기해도 웃으며 넘겨요"

by주영로 기자
2020.06.28 19:18:25

2017년 첫 우승 뒤 지독한 준우승 징크스 시달려
데뷔 이후 준우승만 9번 기록, '준우승 전문' 불명예
2년 전, 멘털 트레이닝 받으면서 자신감, 여유 생겨
"연장전 이글 퍼트 넣을 수 있다고 믿고 자신 있게 쳐"

김지영이 18번홀에서 열린 연장 2차전에서 이글 퍼트에 성공해 우승을 확정하자 두 팔을 벌리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포천(경기)=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첫 우승 뒤 준우승만 6번.’

지독할 만큼 우승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1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F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릴 때만 해도 김지영(24)에게 쏟아진 관심은 컸다. 그러나 첫 우승 뒤 두 번째 우승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손에 잡힐 듯했던 우승의 기회만 무려 6번. 번번이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김지영에겐 ‘준우승 전문’이라는 달갑잖은 꼬리표가 붙었다.

28일 경기도 포천시 포천힐스 컨트리클럽(파72)의 18번홀 그린. 기나긴 우승의 침묵을 깨는 시원한 ‘이글’이 터졌다. 김지영이 연장 2차전에서 약 6m 거리의 이글 퍼트를 홀에 집어넣으며 1142일 만에 통산 2승을 달성했다.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날린 통쾌한 이글이었다.

3년 1개월 만에 찾아온 우승이라 더 달콤했다. 그리고 김지영에겐 자신감과 여유라는 선물도 찾아왔다.

경기 뒤 김지영은 “준우승을 4~5번 할 때는 우승에 쫓겼고, 우승을 못하면 안 될 것처럼 경기했다”며 “오늘은 즐기면서 경기하다 보니 실력대로 자신 있게 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버디도 많이 나왔다”고 우승의 원동력은 마음을 비운 골프 그리고 여유를 꼽았다.

김지영은 기술적으로 나무랄 게 없다. 260야드에 육박하는 장타력에 그린 구석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아이언샷을 갖췄다. 그런 그에게 부족했던 건 ‘불안(멘털)’이었다.



그는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마다 공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미스샷이 나왔다”며 “멘털이 흔들리니 기술적으로도 완전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실수가 나왔다”고 불안감에서 비롯된 흔들리는 멘털이 경기에 악영을 줬음을 문제로 꼽았다.

2년 전부터 나약함을 벗어내기 위해 시작한 멘털 트레이닝이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보기를 하면 ‘왜 그랬을까’라며 화를 냈던 적이 많았다”며 “멘털 트레이닝을 받은 이후엔 ‘이렇게도 보기가 나오는구나’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인정하게 되면서 편해지고 경기에도 여유가 생겼다”고 달라진 변화를 설명했다.

이날의 경기에서도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김지영은 이날 17번홀까지 1타 차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18번홀에서 박민지(22)가 버디를 하면서 연장을 허용했다. 같은 홀에서 약 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치면서 승부의 끝을 내지 못했다. 예전 같았으면 자책했을 순간이지만, 김지영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오히려 오늘은 긴장도 안 됐고, 연장전에 들어가면서는 ‘더 재미있고 즐겁게 경기하자’고 마음먹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연장전 이글 퍼트 순간에도 정규 라운드 18번홀에서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친 뒤 더 자신 있게 치자고 생각하고 퍼트했던 게 이글로 연결됐다”고 우승의 순간을 돌아봤다.

여자 골퍼들은 ‘첫 승보다 더 어려운 2승’이라는 말을 한다. 애타게 기다리던 1승을 했지만, 그 뒤 긴 부진의 터널에 빠져 다시 우승을 하지 못하고 필드를 떠난 선수가 많아 생긴 말이다. 김지영도 그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징크스를 걷어냈다.

김지영은 “사실 올해는 개막이 두려울 정도로 불안한 상태로 시즌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우승이 올 줄 몰랐다”며 “남은 대회도 오늘처럼 즐기면서 경기하면 세 번째와 네 번째 우승은 조금 더 일찍 다가올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