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신원호'↔'2015 나영석', 잊혀진 것을 되돌리는 법
by강민정 기자
2015.11.09 14:25:41
| ‘삼시세끼’ 어촌 편 시즌2, ‘응답하라 1988’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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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회귀.’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그랬다. 추억을 자극한 콘텐츠 덕이다. ‘응답하라 1997’이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시간을 3년 더 감아 ‘1994 감성’을 깨웠다. 이젠 1980년대로 갔다. ‘1년 대기획’으로 받아들여지는 ‘응답하라’ 콘텐츠. 이맘때면 돌아오는 이 드라마에 대중은 복고 열풍을 자연스러운 바람으로 맞았다. 올해는 그 열풍이 더 뜨거워 보인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에 ‘삼시세끼’ 어촌 편 시즌2가 더해졌다.
1988년의 서울 쌍문동과
2015년의 만재도. 17년의 세월을 가로질러야 닿는다. 도심 한복판, 바다 한복판. 현실감이 떨어지는 공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콘텐츠의 감성 하나는 일맥상통한다. 쌍문동 골목의 다섯 가족, 만재도 파란 지붕의 세 가족. 지지고 볶는 일상이 닮았다. ‘응답하라 1988’과 ‘삼시세끼’가
잊혀진 것을 되돌리는 법을 살펴봤다.
| ‘삼시세끼’ 만재도 패밀리(왼쪽)와 ‘응답하라 1988’ 속 성동일 가족 스틸컷.(사진=CJ 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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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 가능한 것들
‘응답하라 1988’은 과거를 현재로 옮겨놓은 드라마다. 그 시대를 온전히 담는 게 관건이다. 큰 틀에선 ‘남편 찾기’ 코드에 집중한다. 시대에 대한 감성은 소소한 에피소드의 몫이다.
소품이 중요하다.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는 “1980년대로 돌아가니 옛 것을 그대로 구현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미술팀, 소품팀에 미안해 죽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왜 미안한지 알 것 같았다. 1,2회가 방송됐을 뿐이지만 1988년도로 돌아간 듯 생생했다. 10cm 두께를 자랑하는 전화번호집부터 그 시대 사용한 가전제품, 달력, 시계까지. 역시 디테일에 강한 ‘응답하라’ 시리즈였다. 집안 인테리어도 딱 그 시대 그 모습이었다. 방송을 지켜본 4050대 시청자는 “저때 꼭 현관이 저렇게 생겼었다” “주방과 거실, 방 구조 모두 정말 비슷하다” “소파도 꼭 저런 걸 샀고 저런 게 유행이었다”며 공감했다.
에피소드도 중요하다. 추억을 자극하는 적확한 상황이다. 한 집에 모여 놀던 아이들에게 “야! 밥무라!”라는 엄마의 대문 밖 외침은 ‘귀가 시계’였다. “아부지 오신단다”라는 말 한마디로 집었던 숟가락을 내려놔야 했다. 찌개 하나에 김치 하나 놓였던 식탁은 순식간에 ‘엄마 손맛’ 가득한 상차림으로 바뀌었다. “밥 한 공기 얻어 온나”와 함께 “이것도 같이 갔다 주고”라는 말이 따라오면 ‘네버앤딩 반찬 품앗이’가 시작됐다. 공기밥 한그릇 얻어야 하는 상황에 깃들었던 미안함은 예기치 않은 고마움으로 굴러들어왔다. 상추 한 대접, 귤 한 봉지, 깍두기 한 사발이 고마움의 표시였다.
관계도 중요하다. 핵가족이 된지 오래,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게 된지도 오래. 1980년대 인간 관계가 2015년의 우리에게 아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손녀딸 둘이 할머니와 한 방에서 한이불을 덮고 잔다. 2015년은 노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다. 요즘 드라마에선 흔히 “할머니 창피하단 말이야”라는 아이들의 투정 혹은 “늙은이가 어딜 껴들어”라는 식의 막돼먹은 젊은이들의 인상을 볼 수 있다. 1980년대엔 “할머니 냄새 너무 좋아”라는 푸근함, “너 할머니 있어서 산 줄 알아”라는 공경심이 있었다.
신원호 PD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정이었다”며 “가족이 꼭 혈연관계로 엮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이웃, 우리 친구, 우리 애인, 이런 끈끈한 사람 간의 주고 받는 마음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워낙 사람과 잘 어울리고 ‘사람’이 진짜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우정 작가의 평소 가치관과도 가장 잘 맞는 텔링(Telling)이다”면서 “흔히 말하는 옛정, 이웃 간의 정, 바빠서 잊고 사는 그런 온기를 이 드라마로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1988’은 그래서 이런 그림을 지향한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스태프가 울컥했는지 ‘엄마에게 전화 한통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응답하라 1988’을 보는 시청자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예능이라 가능한 것들
‘삼시세끼’ 어촌 편은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다. 본편인 정선에서의 이야기보다도 화제다. 나영석 PD는 “게스트가 늘 오는 정선 편과 달리 만재도에선 3인방의 모습에 집중된 부분이 많아서 그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짚었다. 시청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하다.
패밀리의 힘이다. 차승원과 유해진, 손호준의 호흡이 좋다고 한다. 차승원과 유해진 만 나오면 “손호준 빨리 와요”라고 그리워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3인방일 때, ‘만재도 패밀리’가 완전해질 때 비로소 ‘삼시세끼’ 어촌 편 시즌2가 완벽해진다는 의미일 터다. 어찌 보면 남자 셋이 한 집에서 북적거리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 PD는 그래서 3인방을 식구로 역할 분담했다. 차승원은 ‘엄마’ 같은 ‘차줌마’, 유해진은 ‘아빠’ 같은 ‘바깥 양반’, 손호준은 ‘일꾼’ 같은 ‘아들’이다.
상황의 힘은 자연스럽게 발휘됐다.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드라마가 아닌데도 캐릭터가 확실하다. 엄마는 잔소리를 한다. 나가서 돈 좀 많이 벌어오라고 한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어보자고 한다. 아빠의 어깨는 무겁다.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은 눈치만 늘어간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빠져야 할 때를 안다. 어쩌다 양 손 가득한 아빠가 돌아오면 집안은 평화를 찾는다. “뭐라도 좀 만들어봐”라고 거들먹거리는 아빠에게 그날만큼은 ‘쌈닭’ 같던 엄마도 져준다. 눈치만 보던 아들도 이때는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다.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으로 세상에 접속하는 시대다. “같은 2015년을 사는 만재도와 우리 집 안방인데 가족 간 흐르는 기류가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낀다”는 시청자의 반응도 새삼스럽지 않다. ‘삼시세끼’ 어촌 편을 유독 애틋하게 시청하게 되는 이유다.
‘무(無)개입’의 미덕도 힘이다. ‘삼시세끼’ 촬영 장엔 꽤 많은 스태프가 몰린다. 김대주 작가와 나영석 PD, 신효정 PD만 해도 3명. 여기에 다른 작가들과 조연출도 합류한다. 촬영 팀도 포함된다. 그에 반해 출연진 본연의 매력이 전해지는데 무리가 없다. 그냥 카메라 몇 대 설치해두고 편집하는 관찰 카메라 같기도 하다. 차승원의 음식을 맛보는 나 PD의 얼굴이 화면에 간혹 비춰진다. 이 또한 흐름에 방해되지 않아 자연스럽다. 나 PD는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얼마나 웃길지를 생각하며 연출하진 않는 것 같다”며 “차승원과 유해진, 손호준 이런 친구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속 얘기를 꺼낼 수 있는 포인트가 ‘삼시세끼’ 어촌 편의 미덕인듯 하다”고 했다.
‘삼시세끼’ 어촌 편은 계절의 변화를 겪었다.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만물이 상생하는 여름 그리고 가을을 보냈다. 그 사이 사람도 성장했다. 차승원은 ‘강박’도 있었다.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며 ‘점심 뭐 먹지’를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다 그럴 터. 상황이 주는 압박에 뭐든 확실하고 빠른 게 편한 성격도 있었다. 삶의 관점을 여유에 맞췄던 유해진에게 동화됐다. ‘안 되면 말지’, ‘되는대로 하지 뭐’라는 삶의 틈을 받아들였다. 손호준은 보다 만능에 가까운 일꾼으로 성장했다. 주눅이 들었던 막내에서 두 형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영리한 재간둥이가 됐다. 어촌 편 시즌2를 준비하며 나영석 PD가 느낀 변화였다.
가짜지만 진짜를 닮은 드라마, 진짜지만 가짜이기도 한 예능. 포맷과 상관없이 두 콘텐츠가 지향하는 건 진심을 담은 감성이다. tvN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응답하라 1994’ 당시에도 연이어 방송된 ‘꽃보다 누나’로 많은 시청자들이 잊고 살았던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이번엔 그런 여운이 더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라 더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