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리뷰]'작은 연못' 1950년 노근리 사건의 참상을 그대로

by김용운 기자
2009.10.12 20:07:44

▲ 영화 '작은 연못'

[해운대(부산)=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전쟁 중에 일어나는 양민 학살은 전쟁의 참혹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 '작은 연못'은 한국전쟁 초기이던 1950년 7월25일부터 29일까지 4박5일간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인근의 철길과 쌍굴다리에 피신해 있던 인근 마을 주민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300여명이 죽거나 다친 '노근리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작은 연못'은 소재 뿐만 아니라 지난 2003년 제작 단계부터 기존의 충무로 영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작은 연못' 제작만을 위한 특수목적 회사인 '노근리프로덕션'이 설립됐고 '비언소'와 '늘근도둑이야기' 등의 연극으로 대학로 최고의 연출가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이상우가 각본과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성근, 강신일, 이대연, 고 박광정, 김뢰하, 전혜진, 송강호, 문소리 등 대학로의 연극무대를 배경으로 했던 배우들이 대거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스태프 및 후반자업 업체와 장비관련 업체들도 자발적인 노무투자와 현물투자 방식으로 작품에 뛰어들었다.

물론 제작은 쉽지 않았다. 고증을 위해 4년여간에 걸친 현장답사와 생존자 인터뷰, 3개월 간의 촬영과 2년 6개월간의 후반작업을 포함해 7년이라는 제작기간이 필요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 자격으로 12일 오후 4시30분 부산 센텀씨티 CGV에서 처음 공개된 '작은 연못'은 7년여간의 제작 과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영화는 이웃간의 정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에 대한 소식은 듣지만 아직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았던 충청북도 영동 산골. 전쟁의 와중에도 주민들은 별 걱정없이 한가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에게 미군 작전을 위해 마을 소개령이 내려지고 주민들은 급박하게 보따리를 싸들고 미군이 지시하는 대로 마을을 떠난다.

화면 속 주민들은 "우리같은 농사꾼들이 별일 나겠어"하며 "빨갱이 세상이 되면 어떻하지?"라는 정도의 대화만을 나눈다. 즉 한국전쟁에 대한 배경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은 배제한 채 그저 세상에 대한 별 정보 없이 살아가던 평범한 산골 주민의 눈높이로 영화를 진행한다.



이 감독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양민 학살이 벌어지는 그 현장과 그 당시의 참혹함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기관총이 난사당하는 현장에서 피붙이를 껴안고 죽어가는 어미의 모습이나 총에 맞은 아이의 모습을 통해 아비규환이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 감독은 이 영화에서 미군의 잘못을 따지거나 노근리 사건이 파헤쳐지기 까지 40여년의 시간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영문도 모른채 죽어가는 양민들의 입에서는 미군이 우리에게 총을 쏠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자칫 우리사회에서 색깔론에 몰릴 수 있는 소재(?)지만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또한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에 대한 판단이나 누구에 대한 원망을 배제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삶에만 초첨을 맞춘 것 역시 통찰력있는 선택이었다.

또한 대학로의 선수들만 모인 출연진의 연기는 이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저마다 극의 캐릭터에 묻어들었고 이 감독은 수 십명이 나오는 롱테이크 장면도 부담없이 연출할 수 있었다.

부산영화제는 '작은 연못'에 대해 "노근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민중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며 갈라프레젠테이션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갈라프레젠테이션은 지난 2007년 신설된 이후 왕가위와 서극 감독의 신작을 포함해 올해는 이병헌 조쉬 하트넷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소개할 만큼 부산영화제에서 비중이 높은 섹션이다. 이는 이상우 감독의 첫 데뷔작인 '작은 연못'에 대해 부산영화제가 기대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감독은 기대에 부응했다.

한편, 노근리 사건은 1960년 민주당 정권때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면서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나 이 소청은 기각되었고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이후 미국의 ABC와 NBC 및 영국의 BBC 등에서도 보도가 되며 세계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2월 노근리사건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이에 의거해 올해 6월 노근리 합동묘역이 완공돼 당시 희생자 28명의 유해가 안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