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황정민 "밥상 소감 후 10년, '겁나' 많이 바뀌었네요"
by강민정 기자
2015.08.10 11:08:31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나에게도 이런 좋은 상이 오는 군요. 사람들에게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나를 소개합니다. 60여명의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트로피의 여자 발가락 몇개만 떼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5년 11월 28일 청룡영화대상에서 배우 황정민은 영화 ‘너는 내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말한 수상소감은 ‘밥상 소감’이라는 말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후배들 사이에서 이 말은 ‘연예계 속담’이 됐다. 꼭 연기하는 배우들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에겐 충분한 공감이 될 말이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에요. 그 후로 뭐가 바뀌었냐고요? ‘겁나’ 바뀌었죠, 하하.”
황정민이 웃었다. 영화 ‘베테랑’ 개봉에 앞서 인터뷰로 만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쏟아지는 호평 속에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더 힘들어졌으면 힘들어졌어요. 똑 같아요, 연기하는 제 삶은요. 그 사이 물론 선배 됐고, 형 됐고, 주인공도 됐고, 스타도 됐습니다, 하하. 그런데요, 더 외로워졌어요. 다들 절 어려워하더군요.”
믿고 보는 황정민이다. ‘너는 내 운명’ 이후 그가 찍은 작품을 속사포처럼 쏟아낼 정도가 됐다. 지난해 12월 개봉된 ‘국제시장’으로 1000만 배우가 됐고, 이어 ‘베테랑’으로 관객과 만났고 곧 ‘히말라야’로 새 얼굴을 보여줄 예정이다. 최근 1년에만 3번의 파장이 큰 변신이었다. 부러울 것 없는 배우로서 다 가진 행보처럼 보이지만 그는 외롭다고 했다.
“‘선배님은 그냥 OK죠’라고 해요. ‘어때요? 어떤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면 ‘좋은 것 같은데요’라고 해요. 제가 연기를 하면 감독의 시선이 더해지고 그 과정을 거쳐 작품의 시너지가 나거든요. 근데 제가 선배라서 그런지, 그 사이 스타가 되서 그런지(웃음) 저보고 다 좋다고만 해요. 신인감독의 패기를 기대하고 작품을 들어가도 그 분들은 더 그렇더라고요. 그게 저의 숙제가 됐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모두가 다 잘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황정민에 따르면, 주인공되면 좋을 게 없다. 우스갯소리로 “짜증이 난다”고 까지 했다. 연기에 대한 신념은 바뀌지 않지만, 주변의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그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안긴다.
“전 약속 시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건 살면서 변함 없던 가치죠. 근데 제가 요즘 이상한 생각 계산을 하게 됩니다. 원래대로 시간 맞춰 오면 ‘저 칼 같은 무서운 선배’라고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좀 일찍 가볼까 싶으면 ‘저 후배 잡는 선배’라고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좀 천천히 가볼까 싶으면 ‘저 언행 불일치의 선배’라고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에요.”
누구는 생각도 안할 부분을 황정민은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내 연기에 집중하기도 바쁜 이 시간에, 이 생각 저 생각, 말 그대로 ‘생각 계산’에 빠진 모습은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황정민에겐 숙명이었다.
“무시하고 갈 수 없어요. 한 팀이잖아요 어차피. 팀원으로서 계속 열심히 해야하기 때문에 형이고, 선배인 제가 더 노력해야 맞습니다. 작품의 분위기와 캐릭터에 따라 현장에서 저의 이런 모습이 좀 다르게 나타나긴 해요. ‘베테랑’에선 광역수사대 형사로 편하고 털털한 모습이라 완전 동네 형 같았고요. ‘히말라야’에선 엄홍길 대장님의 모습이었으니까 엄격하고 무섭기도 했죠. 어떤 후배들은 그래서 ‘저 선배 진짜 웃기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폼 잡아?’라고 할지도 몰라요, 하하.”
황정민이 열연한 ‘베테랑’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이다. 비행기에 매달려 날아가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한 액션을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등과 몸으로 부딪히는 액션으로 이겼다. “무조건 잘 돼야 한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화 ‘암살’과 나란히 한국 극장의 흥행 성공을 이끌고 있다. 더 커진 스케일,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후배들을 이끌게 된 10년 후 황정민의 변함없는 모습이 이번에도 완벽한 ‘베테랑’이란 밥상을 차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