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뜨겁고 숭고한 역사 마스터피스…여운 깊은 비장한 앙상블[봤어영]
by김보영 기자
2024.12.18 18:46:40
악인의 역사 그린 우민호 감독, 영웅들의 역사로 귀환
대자연이 선사할 영상미…여운 강한 앙상블
스크린 컴백 현빈, 눈빛으로 안중근의 고뇌 그려
의인들의 여정, 혼란한 시대 살아갈 용기와 희망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2024년 오늘을 사는 우리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필 숭고한 역사 마스터피스. 악인들의 일그러진 역사로 시대를 조명했던 우민호 감독이 의로운 영웅들의 역사로 새로운 걸작을 완성했다. 숭고한 영상미, 비장한 앙상블에 충만해지고, 내일을 살 용기와 희망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이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 투쟁 동지들과 함께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노리는 7일의 과정과 고뇌를 그린다.
‘하얼빈’은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을 연출했던 우민호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 이후 약 4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자 ‘남산의 부장들’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역사 소재 대작이다. 앞서 ‘덕혜옹주’,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 웰메이드 작품들로 근현대사 유니버스를 완성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을 맡아 주목받았다. 특히 배우 현빈이 실존 위인 ‘안중근’ 캐릭터를 맡아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여기에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유재명, 박훈, 이동욱,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배우와 글로벌 명품 배우까지 총출동한 캐스팅 라인업, 몽골과 라트비아 한국 3개국을 거친 글로벌 로케이션 촬영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얼빈’은 기존의 위인전과 작품들이 그렸던 역사 속 위인 안중근의 모습과는 다른 결의 안중근을 그린다. 영화는 안중근 장군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1909년 ‘하얼빈 의거’를 결심한 계기가 된 40일 전 전투에서 시작해 하얼빈 거사를 앞둔 일주일 동안의 급박한 과정을 그린다.
직접적 사건과 액션에 집중하기보단, 안중근을 필두로 우덕순(박정민 분), 김상현(조우진 분), 최재형(유재명 분), 공부인(전여빈 분), 이창섭(이동욱 분) 등 독립 투사들이 의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관계의 갈등, 내면의 고뇌를 조명한 스토리와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는 적군의 가족과 목숨마저 허투루 대하지 않던 안중근의 인본주의 정신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원칙을 잃지 않던 고결한 성품을 그렸다. 어떤 상황에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도(正道)만을 걷고자 한 안중근이 과정에서 겪는 고독과 고뇌를 섬세하고 깊게 조명한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선 무력투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이창섭과의 갈등, 살아남은 동지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했던 그의 모습을 통해 인간 안중근의 외로움과 고뇌를 그렸다. 동지들 앞에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그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참혹히 떠난 동료들의 무수한 시체들을 홀로 눈앞에서 목도하며 무너지는 연약한 모습도 담고 있다.
우민호 감독은 그의 고뇌와 여정을 금방이라도 얼음장이 깨져 버릴 듯 위태롭게 얼어붙은 강 위를 홀로 건너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1%의 가능성과 미래를 믿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독립운동 동지들과 안중근이 걸어 나간 외로운 길들은 얼음 호수, 하얗게 눈이 덮인 설원, 모래뿐인 사막 등 척박하다 못해 황량하고 한없이 광활한 대자연의 풍광으로 구현했다. 우민호 감독은 이에 대해 “그분들의 여정, 당시의 마음과 정신을 숭고히 담고 싶었다. 그래서 힘들지만 실제 대자연의 풍경을 찾아다녔다. 그분들이 ‘하얼빈’이란 목적으로 향하는 여정을 최대한 스펙타클하고 숭고하게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얼빈’으로 오랜만에 스크린 복귀한 현빈의 울림 있는 열연과 변신이 영화의 몰입과 감동을 견인했다. 현빈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수척하고 퍼석한 모습이 돼 안중근을 표현했다. 다만 특유의 깊은 눈빛 열연을 통해 국난 속에서도 생명력과 고결함을 잃지 않은 위인 안중근의 에너지를 입체적으로 발산했다. 현빈의 눈빛이 이 영화의 감정적 여운을 완성한다.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이동욱의 뜨거운 앙상블과 연기 열전이 다소 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영화의 전개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특히 각각 안중근의 좌현과 우현이 돼 옆을 든든히 지킨 동지 우덕순, 김상현을 연기한 박정민, 조우진의 폭발적 열연이 놀라움을 선사한다. 말보단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안중근 캐릭터의 대사적 공백감을 이들이 완벽히 메운다. 국난 속에서도 붙잡고 싶은 평범한 삶,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대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괴로워한 내적 갈등, 독립운동의 방법론을 둘러싼 끊임없는 언쟁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인간적 고민을 담았다. 전여빈과 유재명, 이동욱의 열연이 설득력을 더했다. 일본 중좌 모리 다쓰오 역을 맡은 박훈의 매서운 추격전,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의 무게감 있는 연기가 긴장감을 유발하며 위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시금 되새긴다.
대자연의 광활한 영상미와 클래식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이들의 연기를 큰 스크린에서 감상할 보람을 선사한다. 시대의 비극이 주는 메시지와 별개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매력도 충분하다.
12월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