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후려친 테리 라이언, '봉이 김선달'급 수완 사례
by정재호 기자
2015.12.04 06:00:31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한국야구 팬들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지만 미네소타 트윈스는 항상 그래왔듯 명단장 테리 라이언(62·트윈스)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앞선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비교해 박병호의 몸값을 최저수준인 4년 1200만달러(약 140억원)로 묶은 것이다. 박병호의 늙은 에이전트 앨런 네로의 무능한 협상력을 탓할 것만은 아니다. 달리 보면 자신보다 몇 수는 앞선 진짜 달인에게 넋 놓고 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박병호의 계약은 2000년대 이후 ‘천재단장’ 빌리 빈(53·오클랜드 애슬레틱스)과 함께 저비용고효율의 대명사로 각광받는 라이언의 뛰어난 수완이 발휘된 또 하나의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1992년 이후 최하위권을 전전하며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던 트윈스를 일약 아메리칸리그(AL) 중부지구의 강호로 변모시킨 주인공이 라이언이다.
화려함이나 영향력 면에서는 덜했으나 나름 기복을 탔던 빈과 달리 적은 돈으로 꾸준하게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켰던 라이언의 운영방식을 훨씬 높게 평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단장’을 두 차례(2002년, 2006년)나 수상한 실력자는 그러나 2007년 9월 갑자기 열정이 식었다며 12년간 이끌었던 단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라이언이 떠난 트윈스는 곤두박질쳤다. 그의 존재감은 사무쳤고 마침내 2011년 11월 구단 역대 첫 단장 해임이라는 극약처방 끝에 짐 폴라드(62) 구단주는 라이언을 일선으로 다시 불러오는 데 성공했다.
몇 년 새 완전히 무너진 팀을 차차 재건해나가기 시작한 라이언은 2014년 초 피부암 진단을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건강을 회복하고 미네소타 프랜차이즈의 2차 중흥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라이언은 야구선추 출신이다. 고교 때는 야구를 곧잘 했다. 위스콘신주의 조지 파커 고교를 나와 1972년 드래프트 35라운드로 트윈스에 입단한다.
70년대 중반까지 트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는데 1973시즌엔 싱글A에서 ‘10승무패 평균자책점(ERA) 1.70’ 등의 빼어난 성적을 남겼다.
| 테리 라이언 단장이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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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루키에게 불행은 예고없이 닥쳐왔다. 그 뒤 각종 부상들과 싸우며 불과 3년 후인 1976년 6월 더블A 팀에서 방출 당한다.
야구를 그만 두게 된 라이언은 위스콘신-매디슨대에 입학해 체육학 학위를 따고 1980년 뉴욕 메츠의 스카우트로 6년간 일개 근무하며 프런트의 가장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했다.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이었다. 업계에서 선수 보는 남다른 안목을 빠르게 인정받아간다. 트윈스 구단이 스카우트 부장으로 그를 조직으로 다시 불러들인 배경이다.
라이언은 그렇게 6년간 근무한 뒤 그 유명한 앤디 맥페일 단장 하에서 선수육성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94년 맥페일이 명문 시카고 컵스로 떠났을 때 마침내 라이언의 단장 시대가 활짝 열렸다.
라이언의 조직은 메이저와 마이너를 통틀어 지속적인 선수 스카우트와 분석에 엄청나게 의존하는 경향을 띤다. 박병호를 고교 시절부터 지켜봐왔다는 건 그냥 립서비스가 아니다.
단장 취임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베테랑들을 대거 처분하는 강도 높은 유스무브먼트였다. 이 과정에서 참 말들이 많았다. 척 노블락(47)이 대표적이다. 1998년 2월 당시 최고의 2루수 중 하나로 평가받던 노블락을 뉴욕 양키스로 보낼 때 들었던 비난은 아직도 따가울 정도다. 모두가 손가락질 해댔지만 몇 년 뒤 크리스티안 구스만(37), 에릭 밀튼(40, 밀튼은 다시 카를로스 실바-닉 푼토로 순환), 브라이언 뷰캐넌(42, 뷰캐넌은 다시 제이슨 바틀릿으로 순환) 등의 활약을 보면서 비난은 찬사로 바뀌었다.
한물간 베테랑 데이브 홀린스(49)를 시애틀 매리너스로 보내고 데이빗 오티스(40·보스턴 레드삭스)를 데려온 일이나 요한 산타나(36)를 ‘룰5 드래프트’로 훔쳐온 일, A.J. 피어진스키(39·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내주고 ‘조 네이던(41), 프란시스코 리리아노(32), 부프 반서(34)’를 한꺼번에 받아온 작업 등 그의 시대에 잘한 트레이드는 2000년대 최강 트윈스의 든든한 밑거름이 된다.
라이언은 철저한 스카우트에 기반한 성공적인 거래로만 빛나는 게 아니다. 진가는 저비용고효율의 구단운영이다. 미국 내에 손꼽히는 거부지만 돈 쓰길 꺼려하는 구단주 그룹의 뜻과 스몰마켓의 한계를 알고 누구보다 현명하게 상황들을 풀어나간다.
이는 탁월한 안목으로 드래프트를 하고 선수를 잘 육성해 적지적소에 배치하는 작업이 기본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싼값에 선수의 전성기를 최대한 뽑아먹을 줄 아는 라이언의 마수(?)에 박병호가 걸렸다. 단돈 1200만달러에 박병호를 낚아챈 라이언의 2년 뒤쯤 평가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박병호가 호세 아브레유(28·시카고 화이트삭스)급 활약을 하는 날에는 업계가 발칵 뒤집어질지 모를 일이다.
박병호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밝혔듯 이미 끝난 계약에 미련을 갖기보단 이렇게 대단한 단장이 자신을 알아보고 힘껏 키워주겠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가져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