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김영옥 "평소에도 유언 수없이 흘려…존엄사 이참에 시행되길"[인터뷰]

by김보영 기자
2024.02.07 16:47:57

"나문희와 연기한 건 행운, 우리 모두 작품에 반했다"
"박원숙에게도 유언…우리 애들 대신 봐달라고 했다"
"건강하지만은 않은 100세 시대, 건강이 중요해"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번 기회로 존엄사 문제가 좀 다뤄졌으면 좋겠어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의료행위로 억지로 끄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배우 김영옥이 영화 ‘소풍’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존엄사 도입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같이 털어놨다. 아울러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작품으로 깊은 인연을 쌓은 동료 나문희와 ‘소풍’으로 원 없이 짙은 우정의 감정선을 표현해낸 소감, 노년에 임하는 삶의 태도까지 진솔히 밝혔다.

김영옥은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이 개봉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인 노년의 두 여성이 60여 년 만에 고향 남해로 우정 여행을 떠나며 16살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먼저 베일을 벗은 뒤, 평단 및 관객들의 극찬을 이끌었다.

‘소풍’은 연기 경력 63년차의 나문희와 67년차의 김영옥, 65년차 박근형이 의기투합한 영화다. 세 배우의 연기 경력만 합쳐 200년에 달한다. 대한민국 연극과 드라마, 영화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세 배우가 내공 깊은 명연기로 소풍처럼 짧지만 값진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을 표현해냈다. ‘소풍’은 나문희의 팬이 그를 생각하며 쓴 이야기를 나문희 매니저의 부인이 각색해 만든 이야기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나문희가 시나리오를 받고 스토리에 공감해 김영옥에게 적극 출연을 제안해 캐스팅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옥은 극 중에서 삐심이 ‘은심’(나문희 분)의 60년지기 죽마고우이자 사돈인 투덜이 ‘금순’ 역을 맡아 짙은 우정의 감정선과 노년의 고민들을 표현했다.

김영옥은 “이 영화는 우리의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든 작품이다. 그래서 연기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고 감독도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둔 채 지켜보는 방향으로 연출했다”며 “이 작품하며 내가 제일 크게 생각한 건 건강이다. 요즘 100세 시대라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건강히 고령을 맞이하는 게 아니지 않나. 100세를 건강히 좋게 맞이하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내가 몸이 아파 거동을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 느낀 점을 털어놨다. 이어 “역시 중요한 건 건강같다. 돈이 있고 자식과 남편, 아내가 있어도 자기가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의 불행은 대체할 길이 없다. 그걸 이 영화가 보여준 것 같다”고도 부연했다.



‘소풍’은 생의 마지막을 앞둔 80대 노인들이 느끼는 고뇌와 딜레마를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히 녹여냈다. 자신의 힘으로 생리 현상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자신에 느끼는 비참함과 부끄러움, 자식들의 외면으로 요양원에 버려진 친구를 보며 느낀 착잡함, 육체와 마음의 병을 혼자 감내하며 느끼는 외로움까지. 웬만한 내공의 배우들도 표현하기 힘든 노인의 복잡한 감정들을 세 배우는 현실처럼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특히 병상에 누워 담백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죽음과 존엄사에 대한 이야길 나누는 은심과 금순의 모습은 엄숙함을 넘어 뭉클함을 자아낸다.

김영옥은 “우리 나이에 몸이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지금도 이 인터뷰를 하러 계단을 내려오며 꿍얼꿍얼댔다. 나이먹으면서 찾아오는 벽은 모두가 똑같이 느낄 것”이라면서도, “물론 아직 큰 병이 들지 않아 (편찮은 다른 노인들에 비해) 더 낫게 살고는 있지만,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가 병으로 고생하고 애쓰는 것을 가까이 지켜봤기에 고충을 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된 건 우리가 작품에 반했기 때문”이라며 “나문희와 연기한 건 행운이다. 덕분에 힘든 줄도 모르고 촬영했다”고 덧붙였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존엄사’라는 화두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 김영옥은 “내가 실은 유언을 집에서 수도 없이 흘리고 다닌다. 집에서만이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그렇다. 애들이 어릴 때 내가 아픈 적이 있는데 그때 박원숙 등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애들 좀 어루만져 달라’고 했다. 예전에 위장이 안 좋아서 장난처럼 그런 이야기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래서 박원숙이 하는 소리가 ‘유언을 수도 없이 젊어서 하시더니 똥칠할 때까지 사시네요’ 농담을 하더라”면서도, “연명 치료에 대해선 내가 아들 딸한테도 이야기한다. 코에 음식을 들이며 말도 못하고 의식이 오락가락한데 그렇게 시간을 끈다는 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존엄사가 안 되어 있는데 이번에 좀 다뤄졌으면 한다. 존엄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또 “의료행위로만 시간을 끄는 건 있을 수가 없눈 일이다. 아픈 허리를 이끌고 산에 올라 스스로의 삶을 해결하려 했던 영화 속 인물들이 이해가 간다. 그게 행복”이라며 “우리 사회의 굉장히 큰 문제다. 잘 해결이 되었으면 한다”고도 강조했다.

‘소풍’은 7일 이날부터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