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정상을 조준하는, 달라진 스콜라리의 첼시
by임성일 기자
2008.08.26 16:54:36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바야흐로 유럽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유럽선수권이다 올림픽이다, 풍성한 국가대항전 덕분에 그다지 지루할 것 없는 공백기를 보냈다지만 그래도 늘상 펼쳐지는 ‘산해진미’를 근 세 달 동안 섭취하지 못했던 팬들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다.
고개를 돌리는 족족 입맛을 돋우는 ‘음식’들이 즐비하다해도, 아무래도 보편적인 관심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 쪽으로 기우는 게 사실이다. 아직까지 출전은 없으나 ‘한국축구의 이단아’ 박지성(맨체스터 Utd.)이 출격을 준비 중이고, 비록 초반이긴 하지만 설기현(풀럼)이 좋은 스타트를 끊고 있으며, 막내 김두현(WBA)도 무난한 모습으로 신고식을 펼쳤으니 국내 팬들의 시선이 축구종가로 향하는 게 이상할 것은 없겠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의 존재유무가 EPL을 향하는 관심도를 재단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생각이다. 실력과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라는 측면에서, 작금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EPL이니 당대 최고의 선수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지켜본다는 자체만으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2008-09시즌 EPL 판도는 역시 맨체스터Utd.-첼시-아스널-리버풀 등 소위 ‘빅4’라 일컫는 매머드 클럽들에 의해 좌우될 공산이 크다. 아무리 ‘변수’라는 잣대를 내밀어 색다른 전망을 펼친다한들 거함들의 위용이 쉬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까닭이다.
리버풀과 아스널에게는 미안하지만, 빅4들을 둘러싼 시선을 조금 더 세분화하면 맨체스터Utd.와 첼시가 벌일 정상다툼 쪽으로 초점이 좁혀진다. C.호나우도의 이탈을 막아내며 큰 누수 없이 시즌을 맞이하는 디펜딩 챔프 맨체스터Utd.의 기운에 맞설 수 있는 클럽은 역시 첼시뿐이라는 게 대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년과는 다르게 ‘대항마’ 첼시 쪽으로 외려 무게감이 기운다는 사실이다.
전 시즌과 대비, 전체적인 선수단의 드나듦을 살필 때 첼시 역시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부분이 확연히 달라졌고 그것 때문에 안 그래도 강한 첼시의 전력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일단 ‘푸른 보석함’이라 불릴 정도의 화려한 선수면면을 컨트롤 하는 것이 다소 버거워보였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이 물러나고 브라질의 ‘승부사’ 스콜라리가 지휘봉을 잡았다는 게 핵심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우승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스콜라리가 런던으로 오면서 바람 잘 날이 없던 첼시의 호화로운 선수들은 알게 모르게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다. 마냥 ‘돈의 힘’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던, ‘스페셜 원’ 조제 무리뉴(현 인터 밀란 감독)와 유사하고도 다른 카리스마로 팀을 결속시키고 있다는 평이다.
유로2008까지 포르투갈대표팀을 이끌던 스콜라리가 첼시로 넘어오면서 ‘손수’ 천거한 2명의 제자들도 기대감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데쿠와 보싱와라는, 각각 중앙MF와 우측풀백 포지션에서 정상반열에 올라있는 두 선수의 가세로 첼시의 스쿼드는 확실히 짜임새가 배가 됐다.
실상 플랫4의 오른쪽은 첼시에서 일종의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던 곳이다. 보싱와의 포르투갈대표팀 동기인 페레이라가 있었다지만 여타 자리의 무게감에 비해 떨어졌던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적과 동시에 자리를 꿰찬 보싱와는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으로의 전환 시 빠르고 정확한 역습을 강조하는 스콜라리 감독의 의중을 십분 소화하면서 첼시 공격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고작 2라운드밖에 소화하지 않은 마당에 큰 호들갑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2경기에서 첼시의 우측라인은 활발했다.
보는 입장에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첼시 입장에서 보다 달가운 것은 무리 없이 녹아든 데쿠의 모습이다. 실상 데쿠가 가세하면서 첼시의 중원은 그야말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F.램파드가 결국 잔류를 선언했고 지난 시즌 후반부터 M.발라크가 되살아났으며 M.에시앙, J.O.미켈, J.콜 등 신구 미드필더들이 즐비한 호화라인에 과연 데쿠의 영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걱정의 핵심은, 각자가 모두 ‘에이스’에 가까운 발라크, 램파드, 데코, 에시앙 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근심이 한낱 우려가 되는 흐름이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2경기밖에 시즌을 소화하지 않았으나 스콜라리 감독은 황금MF들을 모조리 가동하면서도 무리 없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까지는 ‘굴러온 돌’ 데쿠가 ‘박힌 돌들’보다 나은 모습이라는 게 또 놀랍다. 굳이 EPL 데뷔전(8월17일 vs포츠머스/4-0승)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다음 경기(24일 vs위건/1-0승)도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었다는 ‘가시적 포인트’를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이 데쿠다. 포르투갈대표팀에서도 척추에 가까웠던 데쿠고, 원래 공 잘 차는 A급 선수다.
요는, 애초 우려와는 다르게 조화를 이룬다는 칭찬이다. 스콜라리 말처럼, 데쿠는 램파드나 발라크와는 또 다른 유형의 선수라는 게 입증되고 있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자리를 못 잡고 힘들어하던 N.아넬카가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다.
맨체스터Utd.의 3연패를 저지하기 위한 대항마로서, 그토록 바라는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꿈꾸는 ‘푸른 보석함’ 첼시의 느낌이 확실히 달라졌다. 스콜라리와 함께, 서 말 구슬이 하나 둘씩 꿰어지면서 진성 보석으로 시즌을 시작하고 있는 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