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나다움 응원하는 찐한 우정…김고은·노상현 원작찢은 찐친 케미[봤어영]

by김보영 기자
2024.09.23 17:59:09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어떤 연대나 우정은 로맨스보다 애틋하고 짙다. 원작의 미덕과 각색의 매력을 200% 살린 김고은, 노상현의 새 얼굴.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로 완성한, 징글징글하지만 사랑스러운 우정 서사. 세월이 흘러도 찬란한 나의 청춘을 함께한, 내가 나로서 살 수 있게 지켜봐준 소중한 친구들이 생각나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눈치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 분)와 세상과 거리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 분)가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박상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리메이크했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39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으로 불리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작품이다. 영화는 소설집에서 ‘재희’란 제목의 단편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탐정: 리턴즈’, ‘미씽: 사라진 여자’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이언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애플TV+ ‘파친코’의 이삭 역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시청자들까지 강렬히 사로잡은 배우 노상현의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도 눈길을 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감독의 연출력, 배우들의 열연과 만나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지 증명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마침내 23일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는 토론토에서 받았던 해외 평단 및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단편 소설에서 분량상 주요 사건들 몇 개를 중심으로 다소 함축적으로 표현됐던 재희와 흥수(원작에선 영이)의 13년 서사가 러닝타임 118분의 장편 영화로 만들어지며 훨씬 깊고 다채로워졌다.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살린 에피소드들도 있지만, 원작과 아예 다른 전개와 방향으로 각색된 에피소드들도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원작에선 두 사람의 성격 및 관계성, 감정선에 집중하느라 암시 정도로만 끝냈던 ‘성소수자 혐오’,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향한 편협한 잣대’ 등 사회적 편견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화에선 좀 더 직접적으로 조명하고 확장한 부분도 눈에 띈다. 자유분방한 재희, 세상과 거리를 두는 흥수 두 자발적 아웃사이더들의 성격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새롭게 각색해 ‘데이트 폭력’, ‘성소수자 혐오’, ‘대학 내 성희롱과 성폭력’ 등 사회 속 편견들이 빚어낸 각종 문제들도 드러냈다. 대신 재희와 흥수가 지지고 볶고, 멀어지다가도 다시 서로를 찾는 등 13년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면서 외적, 내적으로 성장하는, 이로 말미암아 문제들을 마주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더욱 집중한다.

‘너가 너인 게 약점은 아니잖아’. 대학 시절 재희가 흥수에게 건넸던 이 말을 시간이 흘러 흥수가 다시 재희에게 그대로 돌려주며 위로하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 ‘우정’, ‘사랑’이란 피상적 단어들로 규정할 수 없는, 보다 깊고 진한 연대의 단계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걸그룹 미스에이의 곡 ‘배드 걸 굿 걸’부터 아이폰 초기 모델, 이태원 클럽 분위기, 대학생 패션 등 2010년대 초 20대 청춘들의 감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반가움과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진정한 매력은 김고은, 노상현 두 배우의 캐스팅과 열연으로 비로소 완전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영화 ‘파묘’로 천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김고은은 불과 7개월 만에 돌아온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무당 화림의 얼굴을 완벽히 지우고 ‘재희’란 캐릭터로 또 한 번 새롭고 뜻깊은 청춘의 초상을 완성했다.



소설 속 재희가 활자를 찢고 스크린에 튀어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캐릭터와 일체된 열연을 보여준다. 특히 김고은은 소설에선 직접적으로 표현된 적이 없지만, 드센 말과 쌈닭 기질에 가려진 재희의 여린 속을 섬세히 드러냈다. 상처받을지언정 매번 후회없이 모든 사랑에 똑같이 진심으로 뛰어드는 재희의 사랑스럽고 거침없는 매력은 배우로서 김고은 특유의 정체성, 강점과 만나 무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영화에선 할 말을 하고, 말 같지 않은 말에 일갈로 대처하는 재희의 사이다적 매력을 더욱 살려 각색한 유쾌한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30대가 되었어도 특유의 개방성과 당당함을 잃지 않은 재희가 일상 속 각종 편견들에 날리는 사이다 발언에 속이 뻥 뚫리기도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첫 스크린 데뷔작인 노상현 역시 ‘파친코’ 이삭 목사 때와는 180도 다른 새로운 얼굴로 변신해 ‘장흥수’란 인물의 번민과 성장을 훌륭히 그려냈다.

피식피식 웃음을 피게 하는 자조적 농담에 가려진 흥수의 고뇌와 번민, 세상의 시선에 자신을 숨기려는 수치심과 억눌림 등을 미세한 눈빛, 표정 변화로 표현했다.

실제로도 또래인 두 배우의 절친 케미, 호흡이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러닝타임을 끝까지 몰입감있게 이끄며 재희와 흥수의 우정 서사에 강렬한 무지개 색채를 더한다.

10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