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글 파문까지…수신료 인상 추진 KBS, 첫발부터 험난
by김현식 기자
2021.02.02 17:01:21
'2500원→3840원' 인상안 이사회 상정
거센 반발 목소리…각종 논란에 잡음
41년째 동결…숙원사업 이뤄낼지 관심
[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KBS가 각종 잡음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수신료 인상 재추진을 위한 첫발을 떼자마자 곳곳에서 반발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내부 직원들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이슈까지 겹쳐 바람잘 날 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KBS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열린 제979차 정기이사회에서 KBS 경영진이 제출한 ‘텔레비전방송수신료(이하 ‘수신료’) 조정안’을 상정했다. 수신료 조정안은 월 2500원의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종 인상 금액은 KBS 이사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월 2500원의 수신료는 컬러TV 방송 시작을 계기로 1981년에 정해진 금액이다. KBS는 “41년째 금액이 동결된 상황에서 전체 재원의 46% 정도를 충당하는 수신료 수입으로는 방송법에 정해진 공적 책무를 다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수신료 조정안을 제출했다. KBS의 요구대로 수신료를 월 3840원으로 인상할 경우 KBS 수신료 수입은 6705억원(2019년 기준)에서 약 1조411억원으로 늘어나 전체 재원의 53.4%를 차지하게 된다.
KBS는 수신료 인상과 함께 추진할 공적책무 확대계획도 이사회에 제출했다. 이를 통해 △ 재난방송 강화 △ 저널리즘 공정성 확보 △ 대하 역사드라마 부활 등 공영 콘텐츠 제작 확대 △ 지역방송 서비스 강화 △ 장애인과 소수자를 위한 서비스 확대 △ 시청자 주권과 설명책임의 강화 △ 교육방송과 군소 지역 미디어에 대한 지원 등 57개 추진사업을 제시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이번 수신료 조정안 제출을 계기로 KBS는 보다 공정하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공익미디어로 거듭나기 위한 각오를 새로이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안전과 상생, 공감과 위로, 연대와 소통의 가치를 키우고 나누는 더 따뜻한 사회,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수신료의 가치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거센 반발 목소리…익명글 파문까지
수신료 조정안은 KBS 이사회 심의·의결 후 방송통신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국회의 승인으로 확정된다. 이사회 상정은 수신료 인상 본격화 작업을 위한 첫 단계에 해당한다.
KBS가 수신료 인상 재추진을 위한 첫 발을 떼자마자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시청자들의 반발도 거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KBS 수신료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 KBS 고액 연봉자 비율이 유휴 인력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김웅 의원은 지난달 29일 SNS에 코로나19 시국 속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인 KBS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KBS 직원 60%가 연봉 1억원 이상을 받고, 억대 연봉자 73.8%인 2053명은 무보직이라고 한다”고 적었다.
이에 KBS는 입장문을 내고 “KBS 직원 중 실제 1억원 이상 연봉자는 2020년도 연간 급여대장 기준으로 46.4%로, 이 비율은 2018년 51.7%에서 꾸준한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1억 원 이상 연봉자 중 무보직자가 2053명’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면서 “2020년 무보직자는 1500여명 수준으로 김웅 의원 주장보다 500여명 이상 적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 ‘블라인드’에 KBS 직원으로 인증된 아이디를 사용하는 A씨가 올린 익명글은 대중의 공분을 사며 KBS의 수신료 인상 추진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다.
A씨는 해당 글에서 “우리 회사 가지고 불만이 많네”라며 “너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우리 회사는 정년 보장이 되고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포함돼서 꼬박꼬박 내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평균 연봉이 1억이고 성과급 같은 거 없어서 직원 절반은 매년 1억 이상 받고 있다”며 “제발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마시고 능력되시고 기회되시면 우리 사우님되세요”라고 비꼬았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1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KBS 구성원의 상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이를 읽는 분들에게 불쾌감을 드린 점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단히 유감스럽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공정성 논란도 걸림돌
KBS 1라디오 주말 ‘14시 뉴스’를 진행한 KBS 아나운서 A씨를 둘러싼 상습 편파 방송 의혹도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인 KBS의 발목을 잡고 있다.
KBS노동조합(1노조)은 1일 ‘KBS1 라디오 편파 왜곡방송 실태조사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를 통해 KBS노동조합은 아나운서 A씨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KBS1라디오 주말 ‘14시 뉴스’를 진행하면서 임의적, 자의적으로 방송한 20여건의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히며 의혹을 제기했다.
KBS노동조합은 △편집기자가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임의로 삭제한 사례 6건, △기사 중 일부를 삭제한 사례 10건, △원문 기사에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추가해 방송한 사례 1건, △기사 삭제로 큐시트를 임의 변경한 사례 수 건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나운서 A씨는 청와대 주요 인사에 대한 검찰조사 뉴스, 북한의 무력시위 동향이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담긴 뉴스, 코로나 신규 확진자 급증 뉴스, 해외 한인 교포의 코로나 사망 뉴스를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KBS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아나운서 제 맘대로 편파 방송사건 양승동 사장과 김영헌 감사는 즉각 실태를 감사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아나운서 A씨가 집권 여당에 불리한 내용을 임의로 빼고 방송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KBS는 “감사를 진행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해당 아나운서와 라디오 뉴스 편집기자 등 관련자들이 제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KBS 보도에 대한 공정성 문제 제기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도 나왔다. 당시 야권 추천 인사인 황우섭 이사는 KBS 아나운서 A씨의 편파진행 논란 및 검언유착 오보 논란을 거론하며 “수신료 인상을 위해선 KBS의 방송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KBS가 방송 공정성 제도를 마련하고 국민적 동의를 얻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여당 측 일부 인사들은 수신료 문제가 정파 대결 도구로 쓰이면 안 된다면서 인상안에 대한 점검과 비판에 집중하자고 맞섰다.
한편 2일에는 KBS가 수신료 인상안에 북한 평양에 지국(支局)을 개설하는 계획이 포함된 것을 두고 온라인상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이에 KBS는 “일각에서 거론하는 ‘북한 퍼주기’ 등의 주장은 KBS에 부여된 공적책무를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라며 “방송법으로 부여된 공영방송 KBS의 책무, 한민족 평화·공존에 기여하기 위한 공적책무 설정의 배경과 내용을 자의적으로 곡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신료 인상은 KBS의 숙원사업이다. KBS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총 3차례(2007·2011·2014) 수신료인상을 추진했다. 3차례 모두 이사회 의결 절차를 완결하고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인상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승인을 받지 못하고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다시 한번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인 KBS가 이번엔 숙원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KBS는 이달 중 수신료에 관한 공청회, 여론조사 등을 진행해 통해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충실하게 수렴하겠다는 계획이다. KBS 이사회는 다음 정기 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논의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