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유명우 "은퇴 후 챔피언 시절 다 잊어버렸죠"

by이석무 기자
2012.12.16 14:22:53

전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 사진=이석무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은 프로 권투의 전성시대였다. 지금의 프로야구 인기가 전혀 부럽지 않았다. 세계타이틀전이 열리는 날이면 거리가 한산해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TV앞에 모여 하나가 됐다. 한국 선수들의 몸짓과 주먹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다. 방송사들은 주말마다 권투 경기를 앞다퉈 중계하기도 했다.

그 시절 최고의 스타는 단연 ‘작은 악마’ 유명우(48)였다. 1985년 12월 8일 대구에서 조이 올리보(미국)를 판정으로 꺾고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른 뒤 무려 17차 방어전을 이뤘다.

1991년 일본 원정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 때문에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곧바로 리턴매치에서 타이틀을 되찾아온 뒤 1차 방어전을 치르고 명예롭게 은퇴를 선언했다.

‘복서 유명우’의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공인 받았다. 유명우는 지난 11일 IBHOF가 미국 뉴욕주 캐너스토타에 있는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서 발표한 내년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 가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으로는 2009년 장정구(49) 이후 두 번째 영광이다.

하지만 유명우 은퇴 이후 한국 권투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됐고 지금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은퇴 후 서울과 수원에 오리고기 전문점을 내며 사업가로도 성공한 유명우는 현재 사양길에 접어든 한국 권투를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동시에 프로모터로 활동하며 ‘제2의 유명우’를 키우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다. 열악하고 힘든 여건이지만 권투에 대한 열정와 사명감은 현역 시절 보다도 더 뜨거워 보였다.

권투와 사업에서 모두 챔피언에 오른 유명우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권투의 과거의 미래를 살펴본다. 다음은 유명우와의 일문일답.

-선수 시절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기억인가.

▲그냥 운동에 미쳤던 시절이었다. 다른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운동만 했던 것 같다. 운동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챔피언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계챔피언으로만 9년을 지냈다. 경량급에서 한 체급을 유지하면서 정상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비결이 있었나.

▲신인 시절에는 나도 게으름을 많이 부렸다. 하지만 챔피언이 된 이후에는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챔피언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보니 운동에만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랭킹에 든 선수들은 다 챔피언급이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다. 그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선 오로지 땀을 많이 흘리는 방법밖에 없더라. 단지 시간적으로 많이 운동하는게 아니라 집중해서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을 많이 하면 지쳐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운동하고 감량하고, 시합끝나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운동하고 감량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했다. 더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나이로 따지면 일찍 한 것일 수도 있는데 ‘권투 나이’라는게 있다. 타이틀 방어전을 오래하다보니 이 정도가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길로 떨어지는 것 보다는 최고의 자리에 있을때 그만 두는게 명예로웠던 것 같다.



-당시 같은 체급에 장정구라는 걸출한 챔피언이 있었다. 혹시 통합타이틀전의 유혹은 없었나.

▲그런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양대 기구 챔피언을 맞붙이기 위해선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국내 시장이 좁다보니 대전료를 책임질 프로모터도 없었다. 방송국 중계권료도 따라주지 못했다. 그래서 통합타이틀전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당시 팬들이 많이 바랬지만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은퇴 이후 사업으로 성공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냥 조그마한 식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한테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진짜 내 본업은 권투과 관련된 부분이다.

-지금 한국 권투가 어려운 시기인데 희망은 있나.

▲희망은 있다. 아마추어에도 유망주가 많고 프로에도 좋은 신인들이 있다. 옛날 인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지만 곧 좋아질 것으로 본다.

-현재 프로모터로도 활동 중인데 흥행을 기대할 수준인가.

▲그런 수준은 절대 아니다(웃음). 굉장히 열악하다. ‘아직도 권투해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권투하면 잊혀진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젊은 층에 가깝게 가야 한다. 아직은 예전에 권투을 좋아했던 고정팬들에 국한돼있다.

-은퇴 후 사업에 뛰어들었을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식당을 시작한 뒤 내가 예전에 유명한 챔피언이었던 것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스타였던 시절 생각을 계속 하면 적응을 못할 것 같았다. 오로지 식당 주인이라는 생각만 했다. 손님들의 눈높이 밑에서 서비스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고객 신발 정리나 음식 서빙, 대리주차 등을 직접 했다. 그런 모습을 고객들이 더 좋아하더라. 카운터에서 돈만 받는 사장이 아니라 몸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니 손님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여줬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지금 김민욱이라는 선수가 동양챔피언으로 있다. 이 선수가 세계로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사실 지금 멕시코에서 WBC(세계복싱위원회) 총회가 열리고 있어 거기서 일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 조만간 경기가 열릴 예정이라 가지 못했다. 문굉진이라는 재일교포 4세 동양챔피언이 경기를 갖게 된다. 국내에 동양챔피언도 단 2명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