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병헌이 아니다"…'콘유' 박보영의 슬럼프 극복 주문 [인터뷰]①

by김보영 기자
2023.08.02 15:02:54

'콘유' 명화 캐릭터로 180도 다른 연기 변신
"이병헌 선배 눈빛 무서웠다"…갈치라 생각하며 극복
"완벽한 이병헌 연기 보며 '난 왜 부족한가' 자책도"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말 그대로 ‘안구를 갈아끼운 듯한’ 선배님의 연기를 보며 놀란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며 제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았죠. 중간에 슬럼프도 왔었지만 전 이병헌 선배님이 아니니까 ‘난 이병헌이 아니다’ 속으로 마인드를 다잡으며 극복했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5년 만에 스크린 컴백한 박보영이 선배 이병헌과의 연기소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박보영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의 개봉을 앞둔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올 여름 출격하는 한국영화 ‘빅4’의 마지막 주자로,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가 원작으로 이 작품의 2부 ‘유쾌한 이웃’을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거쳐 각색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박보영이 ‘너의 결혼식’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스크린 복귀작이다.

박보영은 극 중 민성(박서준 분)의 아내 ‘명화’ 역을 맡아 기존의 러블리하고 청순했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연기 변신을 시도해 호평을 얻고 있다. 간호사 출신인 명화는 외부인을 배척하는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 분)의 폭력적 리더십에 유일하게 경도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다. 굳건한 ‘명화’의 신념은 주민대표가 된 후 점점 더 집착과 광기에 휩싸이는 ‘영탁’에게 묘한 위협과 불안감을 준다. 극의 중후반부 영탁과 주민들의 갈등이 폭발해 몰입감과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던 데는 박보영의 단단한 열연이 뒷받침됐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특히 영탁과 명화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후반부 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가장 필요하면서 중요했던 장면으로 꼽힌다. 박보영이 이번 작품을 촬영하며 가장 부담을 느꼈던 장면이기도 했다. 박보영은 “그 장면은 감독님은 물론, 현장에서 마주치는 모든 선배들께서 ‘그 신 잘 준비하고 있니’ 물어보실 정도로 중요했다. 저 역시 그 신이 가장 우려되고 긴장했던 지점”이라고 회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태화 감독이 내렸던 특별(?) 솔루션도 소개했다. 박보영은 “내가 과연 선배님 앞에서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제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신 감독님께선 ‘영탁’의 사진을 고화질로 뽑아 제게 주셨다. 그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하고, 이를 보며 ‘저 사람은 갈치’란 생각을 하며 연습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며 “왜 굳이 ‘갈치’였을까는 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별 것 아닌 흔한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을 표현할 수 있게 강조하신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엔 사진만 봐도 깜짝 깜짝 놀랐는데 계속 보니 점차 익숙해지더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선배님의 눈빛이 정말 무섭다.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실제 첫 테이크 촬영할 때 좀 ‘쫄았다’”고도 토로했다.



다행히 이병헌의 조언으로 ‘명화’의 강인한 눈빛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는 고마움도 전했다. 박보영은 “선배님이 연기할 때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시는 편은 아니다. 다만 그 장면과 관련해 선배님이 딱 한 번 제게 이야기해주신 건 있었다”라며 “명화가 영탁과 이야기할 때 시선을 다른 곳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시선이 빠지면서 힘도 같이 빠지는 느낌이라 계속 시선을 끌고 가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다”고 말했다.

완벽히 ‘영탁’의 눈빛을 장착한 이병헌의 열연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연기를 자책하던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박보영은 “선배님과 연기하는 동안 일기장의 내용이 온통 ‘왜 나는 이렇게 모자른 인간인가’란 문구로 가득찬 적도 있었다”라며 “‘저런 사람이 배우지’란 생각도 들더라. 나는 무엇을 하든 늘 예열이 필요한 사람인데 선배님은 그런 것도 필요없이 어떻게 저렇게 완벽히 연기를 하실 수 있을까 생각을 엄청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실은 중간에 그 생각들로 가득 차 슬럼프가 온 적도 있다. 나는 ‘명화’란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에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이 있고, 늘 부족한 2%를 채워나갈 수 있는 정답을 찾아가야 하는데 상대방은 수많은 정답지들을 갖춘 것 같았다”며 “하지만 내가 선배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차이를 마음에서 인정하며 극복해나갔다. 물론 그 고민들을 선배님께 털어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일기장에 풀어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촬영을 계기로 이병헌과는 더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박보영은 “촬영이 끝나고 소속사 워크샵도 있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함께 홍보 활동을 하면서 전보다 배우 이병헌이 아닌 인간 이병헌 선배님을 마주할 기회가 많아졌다”며 “사석에서의 선배님은 굉장히 유머가 많고 유쾌하시다. 지금은 전과 달리 제가 먼저 선배님께 말을 걸고 농담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병헌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로서 많은 장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도 전했다. 박보영은 “일할 때 정말 빈틈이 없으신 것 같다. 스탭들을 대하는 태도, 연기적 자세 모든 면에서 꼼꼼하시다”고 떠올렸다. 이어 “선배님의 섬세함을 느낀 적이 많다. 아무래도 작품 경력이 워낙 많으시니 감독님 입장에서 혹시 자신에게 다른 것들을 연기하며 요구하기 어렵진 않을까 생각하셨었나보다. 그래서인지 감독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선배님이 늘 먼저 ’수정사항은요?‘, ’어떤 부분을 다르게 했으면 좋겠나요?‘ 먼저 질문을 던져주셨다. 덕분에 하나의 신을 표현할 선택지도 많아지고 이를 통해 좋은 결과물도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미담도 전했다.

한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8월 9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