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배 집행위원장 "시민이 자부심 느끼는 BIFAN으로"①
by박미애 기자
2016.07.18 10:24:06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부천시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강렬한 바람이 전해졌다. 부천영화제는 1996년에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 그 이듬해 출발했다. 국내에서 부산영화제 다음으로 꼽히는 부천영화제는 올해로 스무 살이 됐다. 사람으로 얘기하면 성인이다. 최용배 위원장은 그런 때에 부천영화제를 이끌게 돼 어깨가 무겁다.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오는 21일 개막하는 20회 부천영화제 준비에 바쁜 최용배 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서 여러 차례 집행위원장직을 고사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임 집행위원장의 임기가 끝난다면서 자리를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천영화제는 심사위원 한 번 해보고 개막식에 2번 가본 게 인연의 전부였죠. 경험도 없었습니다. 제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사실은 여러 차례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지인 중에 한 분이 ‘영화제는 잘 살려내 영화인과 관객이 활용하게 해야 할 자산이다’고 말하더군요. ‘진정성 없는 사람이 하게 되면 지켜야 할 자산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요. 그 말이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한창 부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판타스틱영화제를 표방하며 부산영화제와 함께 주목받고 성장했다. 2004년의 일이다.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이 갑작스럽게 해촉되는 사건이 있었다. 영화인들은 부천시에 반발했다. 영화인들은 부천영화제도 보이코트했다. 당시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는 듯했는데 영화인 일부는 얼마 전까지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영화제를 외면했다. 그래서 최용배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과거사 청산이다.
“부천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문제부터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1월에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 해촉 등에 대해 유감 의사를 표명하는 공식적인 자리를 가졌지요. 또 김홍준 전 위원장에게 올해 영화제에 모시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참석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달에는 김만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명예조직위원장으로 물러나고 영화인 출신인 정지영 감독이 이례적으로 조직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최용배 위원장 체제 이후 일련의 변화는 영화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용배 위원장의 임기는 1월부터였다. 한 해 영화제가 끝이 나면 곧장 다음 해 영화제를 준비하는 게 보통이다. 임기가 시작된 지 고작 6개월이 흘렀는데 그는 영화제 살림을 알차게 꾸렸다. 그 틈틈이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 여러 해외 영화제를 다녀왔다.
“제작자로 영화제를 다닐 때와 위원장으로 영화제를 다닐 때가 많이 다르더군요.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극장 시설을 보게 되고 어떤 사람이 오는지,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그런 것들을 눈에 먼저 띄더라고요. 인상적이었던 게 유럽 영화제들은 규모에 비해서 관객 수가 많아요. 클레르몽페랑 같은 경우에는 큰 도시도 아니고 단편영화제인데도 1000석짜리, 400석짜리 큰 상영관이 영화제 기간 다 찼어요. 신기하고 놀라웠죠. 또 부러웠습니다.”
이들 영화제에 참석해서 부천영화제를 홍보하고 초청작 및 게스트 섭외에 공을 들였다. 초청작이 49개국 320편이다. 예년보다 80여 편이 늘어난 역대 최대의 작품 편수다. 양적으로 늘렸을 뿐 아니라 프로그래머 2인, 중국어권 및 동남아권 객원 프로그래머 3인을 확충해 질적으로도 강화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직접 영화제 일을 하면서 욕심만 내다가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영화제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목표를 새롭게 설정했어요.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가 되는 것, 그게 올해 부천영화제의 목표입니다.”
최용배 위원장의 논리는 명쾌했다. 기본인 영화에 충실할 때 영화인들이 영화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는 법이다.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제가 되면 자연스럽게 관객도 시민도 동참하게 된다.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제가 되려면 먼저 부천영화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했어요. 영화제 초기에는 ‘아멜리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말랑말랑한 영화들이 많았어요. 이런 전통이 없어진 데 아쉬워하는 관객들이 있더군요. 일반 시민들은 피가 튀고 광분하는 영화들을 꺼리는 듯 했어요. 반면 부천의 색깔을 지켜달라며 센 거 아니면 안 보겠다는 분들도 있었고요.”(웃음)
최용배 위원장은 보다 많은 관객과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월드 판타스틱 블루’와 ‘월드 판타스틱 레드’로 프로그램 섹션을 재구성해 초보자도 마니아도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작품들로 채웠다. 영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채로운 산업 프로그램에도 눈길을 끈다. K스타 쇼케이스 같은 인재 발굴 프로그램이나 직경 10m의 돔을 설치해 VR 콘텐츠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선보이는 VR특별전 등이 그것이다. 20회에 걸맞게 관객들을 끌어들일 흥미로운 요소들을 충분히 갖췄다. 여기에 어린이와 청소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존’도 부활시켰다. 다음 세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특별했다.
“부천영화제도 유럽의 영화제들처럼 규모는 작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서는 영화에 친숙한 문화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부천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화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초등학교에 추천작을 선정해서 단체 관람토록 하거나 DVD를 제공하는 일들을 부천시와 함께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그 어린이들이 10년 뒤에는 훌륭한 시민관객이 되지 않을까요. 임기 3년간 열심히 일해서 5년 10년 후에는 부천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부천영화제가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서울대 인문대 서양사학과와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영화조감독, 대우 영화사업본부 투자담당, 시네마서비스 배급부문 상임이사, 영화사청어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01년 영화사청어람을 설립하고 영화 ‘괴물’ ‘26년’ ‘효자동 이발사’ ‘작업의 정석’ ‘사과’ 등을 제작했다.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초이스 심사위원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을 맡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