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리더십, 키워드는 권리와 책임

by정철우 기자
2013.07.01 11:34:24

김기태 LG 감독이 6월30일 잠실 SK전서 승리한 뒤 승리투수 주키치와 특유의 손가락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김기태 LG 감독은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지도자다. 10년째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 LG의 수장. 하지만 LG는 최근 10연속 위닝 시리즈(3연전 시리즈 중 2승 이상)를 거두며 2위 넥센과 승차 없는 3위에 랭크 돼 있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 있지만 최근 몇년 사이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모래알 같은 팀 워크라며 늘 손가락질 받던 LG다. 하지만 요즘 LG 덕아웃에선 그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성적 외에도 리더십으로 김기태 감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정작 김 감독은 손사래를 친다. 괜한 겸손이 아니다. 진심으로 “난 리드하고 있는 게 없는데 자꾸 리더십을 말해 곤란하다”며 아주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그의 다음 설명을 듣고 나면 왜 그가 좋은 리더인지에 대한 힌트를 강하게 얻을 수 있다. “1년을 봤을 때 계획을 짜고 훈련을 지시하는 6개월(10월~3월)은 코칭스태프의 몫. 나머지 6개월(정규 시즌)은 선수들이 알아서 책임을 지라고 했다. 그냥 놔두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최대한 선수들이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권리는 지키도록 해 주고 싶다. 그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 그리고 또 한마디. “포스트시즌 가게 되면 선수들끼리 할 수 있는 기간이 한달 더 늘어난다. 10월에도 야구하니까”라는 것도 덧붙였다.

LG 선수들은 강제 휴식기(홀수 구단 체제로 생긴 경기 없는 4일)훈련 스케줄을 직접 짜서 감독에게 보고한다. 이틀 연속 휴식만 없으면 시간은 큰 상관 없다.

월요일에 원정을 떠나는 시간도 선수들이 정한다. 한 선수는 “피곤해서 늦게 가고 싶으면 늦은 출발을, 원정 맛집에서 회식할 계획이 있다면 좀 일찍 떠난다”고 말했다. 선수단 벌금, 복장, 자율 훈련시 참가 여부 등 많은 것들을 선수들이 결정한다.



감독으로서 군기(?)잡기 가장 좋은 것들을 선수들에게 넘겨 준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대표 하위팀을 맡게 된 감독이 말이다. 그것이 선수들의 권리라는 이유로.

아주 작은 부분 같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명장으로 불리는 몇몇 감독들은 이런 방식을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기술(?)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노하우를 아무나 가질 순 없다. 대부분 감독은 그저 그때 그때 상황에 결정이 바뀌곤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감독과 선수는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이 간극을 좁혀 하나가 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LG 한 선수는 “우리가 그저 편하다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해진 틀이 다른 팀보다 훨씬 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끝이다. 원칙에 벗어나면 예외가 없다. 그 무서움을 알기에 더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수는 “앞과 뒤가 같은 분이다. 앞에서는 다들 웃어준다. 하지만 뒤에서 본 모습이 나오는 감독들이 많다. 처음엔 감독님의 결정이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 지켜보려 하는 줄 알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 하지 않는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만큼 그걸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던져주 듯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찾아주고 책임을 가르치는 것. LG 트윈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김기태 리더십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