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패의 병법](18)완벽한 승리속에 감동 있다

by정철우 기자
2011.02.28 12:16:10

▲ SK 선수들이 타격 훈련에 앞서 손에 테이핑 하는 모습. SK 뿐 아니라 모든 팀 타자들이 캠프서 몇번씩 물집과 군살을 오가야 한다. 사진=SK 와이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얼마 전 중국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대작 영화 손자병법에 한국 3D 기술이 참여하기로 결정돼 화제가 된 바 있다.

약 1억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다는 걸 보니 화려한 액션이 가득 찬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손자병법이 영화화 되는 것과 화려한 액션이 어울리는 일일까?

손자는 자신의 병법서에서 남들이 화려하다고 말하는 승부를 경계했다. 손자병법은 전쟁에 들어간 이후의 전략 보다는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준비하는 것에 중점을 둔 책이다.

때문에 싸움의 기술이 궁금했던 사람들에겐 이 책이 그리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포스트시즌은 명승부가 유독 많이 나오는 무대다. 매 경기가 결승전인 만큼 양팀 모두 총력을 다 기울인다. 한팀이 독주하는 경우도 적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전력 누수를 가져오는 승부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말은 '다음을 대비할 힘은 남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페넌트레이스와는 다르다. 페넌트레이스의 총력전은 그 속에서도 휴식과 안배가 가능하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의 총력전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포스트시즌서 12경기 이상을 치른 팀은 한결같이 이듬해 팀 승률이 떨어졌다. 그만큼 부상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차례 예외는 있었다. 2004년 삼성이 그랬다. 하지만 당시 삼성은 FA 심정수와 박진만을 한꺼번에 영입하며 100억원이 훌쩍 넘는 놀라운 투자를 했었다. 2003년과는 사실상 다른 팀이었던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 정도 돈을 쓸 수 있는 구단은 거의 없다.

12경기 이상 치렀다는 것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는 의미다. 이런 팀들은 우승을 차지하기도 어렵다. 2000년 이후로는 2001년 두산만이 그 영광을 차지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해진다.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뒤 여유있게 준비해 한국시리즈를 노려라." 이것이 최강이 되는 것은 물론 최고의 자리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우승을 꾸준히 노리고 거둔다는 것은 생각한 것 이상의 소득을 가져다준다. 주전급 연봉이 2억원을 넘긴 SK가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사랑하는 프렌차이즈 스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SK는 지난해 가득염 안경현 김재현 등이 은퇴했다.
 
주목할 것은 이 중 누구도 감독과 구단으로부터 은퇴를 권고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인들이 원했다면 좀 더 뛸 수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팀에 힘이 될 수 있음을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팀 성적이 부진한 팀이었다면 어땠을까. '리빌딩'이라는 그럴듯한 명제 앞에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하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게 된 우리의 영웅들이 어디 한.둘이었는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은퇴식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선 우승팀, 그것도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킨 팀에서나 이것이 가능하다.
 
완벽한 승리는 때론 맥없는 승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가 힘 한번 쓰지 못하게 틀어막고 거둔 승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승부는 그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단 눈 앞에서 펼쳐진 승부 뿐 아니라 이전의 준비과정까지 들여다보면 또 다른 묘미를 찾을 수 있다.

'전쟁의 신' 나폴레옹은 치밀한 준비의 전략가였다. 그는 전쟁이 열리기 전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끊임없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만큼 소심한 사람도 없다. 나는 작전을 계획할 때 지나칠 정도로 위험을 가정하고 상황을 불리하게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이상한 을 느낀다."

명승부는 결과 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훈련과정을 함께 호흡하며 지켜볼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 전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취재를 다녀왔다. 훈련장에서 만난 한 투수는 이런 말을 했다.

"팬들이 우리 캠프에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야간 훈련을 할 때 조용히 마운드에 한번 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곳에 서면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을테니까. 또 마운드에 서서 모든 베이스와 외야까지 한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들릴테니 말이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느껴본다면 야구가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스프링캠프서 만난 선수들은 정말 쉼 없이 치고 던지고 받는다. 이제 도사가 될 법한 동작들도 끊임없이 반복한다.

하지만 1등이 되는 팀과 선수는 정해져 있다. 그만큼 고되고 지난한 시간을 보낸 뒤에도 얻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외로움과 한계를 넘어설 때 진정한 최고가 될 수 있다.

선수들의 땀을 조용히 바라보다 보면 그 마음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야구가 좀 더 풍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해 지바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뒤 메이저리그(미네소타)에 진출한 니시오카는 이런 말을 했다.

"야구는 보기에 정말 쉬워보여. 농구나 축구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경기에 몇번 타석에 서서 배트 몇번 휘두르고, 안타면 달리고.수비때는 그냥 멍청하게 서있다가 공이 오면 잡아서 타자를 아웃시키고... 어쩐지 이게 스포츠인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 않아?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미없게 한이닝을 막는거야. 세타자가 모두 초구땅볼을 쳐서 삼자범퇴. 이게 가장 좋은 경우지. 야구라는 종목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게 아니라 경기전에 땀을 흘리는거야. 평범한 2루수 땅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몇천 몇만번의 땅볼을 잡으며 땀 흘리고 외야플라이를 잡으면서 주자를 진루하지 못하게 하기위해 수도 없이 하늘로 뜬 하얀 공을 쳐다보지.타자가 140km가 넘는 공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치기위해 어릴적부터 계속 공을 보아 온거야. 야구란건 힘들어...안보이는곳에서 열심히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