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김동현 "화려한 건 15분…즐겨야 버티죠"
by노컷뉴스 기자
2009.02.11 14:40:00
[노컷뉴스 제공] " 엄마, 져서 미안해 " 지난 1일 미국에서 열린 'UFC 94'에서 카로 파리시안(27·미국)에 패한 직후 김동현은 라커룸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UFC 2연승 후 첫 패배. 혹여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을까 염려됐다. 그러나 부모는 " 고생했어. 안 다쳤으면 됐어 " 라고 위로했다. 되레 아들이 상심할까봐 걱정했다.
담담한 척 했지만 아버지 김길철(53) 씨는 심판 판정이 못내 아쉬웠다. 이날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대전시 서구 갈마동의 소담 음식점(감자탕 전문)에서 고등학교(서울 영동고) 동문들과 함께 아들의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본 아버지는, 파리시안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 억울한 기분에 밥상을 쳤다 " 고 했다. " 떨리고 무서워서 " 생중계는 못본다는 어머니 홍순애(49) 씨는 공항 귀국장에서 " 너 때문에 엄마가 오래 못살겠다 " 고 아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2-1로 판정패한 후 김동현도 "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고 했다. " 3라운드에서 테이크다운을 한 번 더 시켰다면…. " , " 상대의 업킥 반칙 때 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이어졌다면…. " 그동안 쌓은 무패 전적(11승 1무)에도 흠집이 생겼다. "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는데 첫 패배구나 " 아쉬운 마음이 꼬리를 물었다.
경기 4일 전 미국에 가는 바람에 시차적응도 못한 채 출전한 맷 브라운 전(2008년 9월) 때와 달리 이번엔 한달간 미국 전훈을 소화한 덕분에 컨디션이 최고였다. 소속팀(부산 팀M.A.D) 양성훈 관장도 처음 세컨드로 동행해 심적으로도 안정됐다. 제이슨 탄, 맷 브라운 전을 보고 김동현의 팬이 된 재미교포 조상현(25) 씨는 전훈 기간 중 통역, 숙식, 차량을 제공해줬다.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았기에 판정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을 터.
그러나 우울한 기분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 판정이 내려진 순간 경기장에 야유가 쏟아졌잖아요. 판정에 대해 관중들이 제 편이 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 실제로 시합 후 많은 팬들과 격투기 관계자들이 김동현의 손을 들어줬다. UFC 대나 화이트 대표는 경기 후 에프터파티에서 " (김동현은)승리를 도둑맞았다 " 고 했다.
비록 졌지만 김동현은 강자와의 싸움을 통해 이겼을 때보다 더 많은 걸 얻었다. " 이번엔 클린치 상황에서 패턴이 너무 단조롭고, 테이크다운 위주로만 했는데요. 앞으론 클린치 상황에서 더티복싱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타격 연습도 많이 해야할 것 같구요. "
김동현으로선 무엇보다 세계 톱 레벨에 있는 선수와 싸우면서 자신감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 UFC에서 아직 3전밖에 안 치렀잖아요. 이번 시합을 통해 스스로 발전 가능성을 많이 느꼈어요. 앞으로 전 세계 팬들이 제 시합을 보고 싶어할 거라고 믿어요. "
[김동현과 부모님 인터뷰]
'파이터' 김동현의 가장 큰 미덕은 격투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 (격투기를)너무 좋아하고,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고 했다.
고 2때 처음 격투기 동영상을 보면서 각종 기술을 마스터한 김동현은 요즘도 격투기 동영상 보는 게 유일한 취미란다. 그러면서 갑자기 씨~익 웃는다. " 제가 공 갖고 하는 운동은 잘 못해요. 근데 길거리에 펀치기계 있잖아요. 그건 잘해요. 지금까지 져본 적이 없어요 "
그래서일까. 김동현은 경기 중 관중들의 야유에 대해서도 담담하다. " 위축되지 않냐구요? 괜찮아요. 야유가 나온다는 건 관중들이 경기를 지루하게 느낀다는 거잖아요. 저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게 돼요 "
만원 관중에 둘러싸여 있어도 긴장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 "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가장 잘하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설레이고, 흥분되고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 김동현은 또 " 파리시안이랑 할 때 1라운드에서 제가 응원을 유도하는 제스처를 했어요. 근데 관중들의 함성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너무 좋았어요 " 라며 웃었다.
그러나 김동현은 UFC무대에 서기까지 많은 인내와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 (격투기는)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선수들은 경기하는 15분을 위해서 매일 운동하는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거든요. 즐기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어요. "
여느 부모가 그렇듯 김동현의 부모도 아들이 격투기 선수가 되는 걸 몹시 반대했다. 하지만 때론 심한 말을 해가며 말리는 부모님을 설득시킨 힘은, 김동현의 격투기를 향한 진실된 마음이었다.
" 나중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나이 들어서 정말 후회할 것 같아요. 되든 안되든 (하고 싶은 걸)젊었을 때 끝까지 해보고 싶어요 " 김동현의 진지한 모습에 부모도 결국 설득당했다.
6년 전 파이트머니 100만원을 받고 링에 오르던 무명 파이터 김동현은 이제 세계 최고 격투기무대 UFC에서 시합 당 대전료 2만 달러 이상을 받는 최고 유망주가 됐다. 그러나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4~2005년 국내 격투기리그 스피릿MC 시절엔 반대하는 부모님 몰래 경기에 나갔다. 지금은 식당 한 켠의 방 한 가운데 모셔져 있는 수십 개의 트로피도 당시엔 장롱 속에 숨겨놔야 했다. 행여 상처난 얼굴을 부모님에게 들킬세라 늘 노심초사해야 했다.
김동현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운동을 접고 1년 일정으로 뉴질랜드로 떠나기도 했다. 부모님은 "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 그는 거기서도 유도장을 다녔다. 결국 4개월 만에 돌아왔다. 한국에 왔지만 운동에 대한 미련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한 달을 못버텼다. 방황의 시간은 1년 여간 계속됐다. 결국 부모님을 설득하기로 맘먹었다. " 1년만 믿어보세요. 1년 동안 성과 못내면 그만둘게요 " 결국 허락을 받았고, 그때부턴 운동만 팠다.
용인대 유도학과, 해병대, 격투기…. 부모는 " 힘들고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는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 고 했다. 그러나 결국 아들의 굳건한 의지는 꺾지 못했다. 아들에 대한 바람을 묻자 어머니는 잠시 말을 골랐다. " (동현이가)아직 시합하면서 많이 맞은 적이 없는데, 경기를 하다 보면 다칠 때도 있겠죠. 제가 그걸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도 본인이 좋아하니까 선수생활 하는 동안 안 다치고 건강하게 잘 했으면 좋겠어요 "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듯 김동현의 부모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그래도 너무 긴 세월 동안 하지 말았으면… . "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부모님의 얘기를 경청하던 김동현이 한 마디 툭 던졌다. " 그건 인재를 썩히는 거에요. " 팬들의 바람처럼 그는 롱런하고 싶다는 의사를 슬며시 피력했다.
5월 전후로 있을 UFC 4차전을 앞두고 김동현은 훈련에 돌입했다. 대회 전 일본 화술혜주회에서 전훈을 갈 계획도 갖고 있다. " 환율이 떨어지면 " 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난번 미국 전훈은 삼성제약으로부터 훈련비용을 도움받았지만 이번엔 다시 자비로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국에선 아직 격투기가 스포츠로 완전히 자리잡히지 않아서 스폰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자신을 단련시켰던 '격투기 소년'은 '한국인 최초의 UFC 파이터'를 넘어 세계 최고 파이터라는 꿈을 향해 성큼 성큼 내딛고 있다.
" UFC 웰터급 챔피언 조르쥬 생피에르는 강자 중의 강자죠.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실력을 계속 갈고 닦고 저를 강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막상 싸우기 전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생피에르와 싸울 레벨이 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해서 꼭 챔피언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