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서정, 더 큐어!

by연예팀 기자
2013.07.28 15:07:46

데뷔 35년 만에 첫 내한 공연
26일 안산밸리록페스티벌
세 시간 공연·36곡 히트곡 퍼레이드
로버트 스미스, 매혹적 목소리 여전

영국 밴드 더 큐어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로버트 스미스. 그가 26일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경기도 안산밸리록페스티벌에 참여한 큐어는 세 시간 동안 36곡을 연주했다(사진=CJ E&M).


[이데일리 연예팀]헝클어지고 부푼 머리에 짙은 검은색 눈화장. 그의 붉은색 입술도 시들지 않았다. 그룹 더 큐어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로버트 스미스(54). 중년의 입에서는 여전히 소년의 서정이 흘렀다. 무심한 듯 관능적인 목소리. 시간의 공격도 피해 간 낭만의 목소리는 유효했다. “아이 돈 케어 이프 먼데이 이즈 블루, 잇츠 프라이데이 아임 인 러브(I don‘t care if monday is blue, it’s friday I‘m in love)” 히트곡 ‘프라이데이 아임 인 러브’가 흐르자 들판이 춤췄다. 관객들은 ‘떼창(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일컫는 말)’으로 징글대는 기타 연주에 화답했다. 추억이 현실이 되는 시간. 마흔이 넘어 보이는 중년 남성 관객도 돗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큐어’라서 가능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공연날은 바로 26일 금요일. 관객들은 ‘프라이데이 아임 인 러브’를 들으며 금요일의 낭만을 즐겼다.

짜릿했다. 무려 35년 만의 첫 만남이다. 무대는 경기도 대부바다향기테마파크 내 페스티벌파크에서 펼쳐진 ‘2013 안산밸리록페스티벌(CJ E&M주최)’. 전설의 영국밴드 큐어가 1979년 데뷔 후 처음으로 내한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큐어 한국 공연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큐어는 메인 무대인 빅톱스테이지에서 세 시간이나 공연했다. 연주한 노래만 36곡이다. 철저히 음악으로만 소통했다. “생큐” 로버트 스미스는 공연 시작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딱 한 마디 인사말로 입을 뗐다.

멜로디의 진수성찬이었다. 큐어가 그간 일궈 놓은 ‘보이즈 돈 크라이(Boy‘s don’t cry)’, ‘러브송(Lovesong)’ ‘픽처스 오브 유(Pictures of you)’, ‘룰러바이(Lullaby)’ ‘패시네이션 스트리트(Fascination street)’ 등 히트곡이 쏟아졌다. 경쾌하거나 침잠하는 음울한 노래까지 다양한 레퍼토리가 펼쳐졌다. 1집 ‘쓰리 이매지너리 보이즈(Three imaginary boys)’ 중 수록곡 ‘10:15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부터 2008년 발매한 최근작 ‘4:13 드림(Dream)’ 수록곡 ‘더 헝그리 고스트(The hungry ghost)’까지. 35년 큐어 역사를 귀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연주는 탄탄했다. 세 시간 동안 흐트러짐이 없었다. 로버트 스미스와 ‘글램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와 오랫동안 작업했던 큐어의 또 다른 기타리스트 리브스 가브렐스의 기타 협주는 안정적인 단층처럼 쌓여 완성도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로저 오도넬은 녹슬지 않은 키보드 연주로 곡의 화음을 받쳤다.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조된 만큼 무대 영상도 화려했다. 큐어는 무대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무한대로 펼쳐진 밤거리를 연상케 하는 영상을 쏴 입체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큐어는 무심한 듯 하면서도 한국팬을 염두에 둔 눈치였다. 로버트 스미스는 미국, 브라질 등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붙여져 있는 기타를 들고 연주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큐어는 한국 공연의 마지막을 데뷔곡인 ‘킬링 언 아랍(Killing an arab)으로 끝냈다. 끝에서 외친 처음이다. 큐어의 시간은 그렇게 거꾸로 흘렀다.

미국 밴드 폴리포닉스프리가 공연 전 이색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웃겼다. 흰색 천에 ‘모두 웃어요’란 문구를 스프레이로 뿌리고 공연을 시작했다(사진=CJ E&M)
▶더 큐어: 로버트 스미스를 주축으로 한 컬트 밴드다. 영국 남동부 크롤리에서 1976년 결성, 1979년 첫 앨범을 냈다. 음울하면서도 멜로디 라인이 살아 있는 노래가 특징이다. 어두운 고딕과 화려한 글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가사는 문학적이다. 로버트 스미스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영감을 받아 ‘킬링 언 아랍’이란 곡을 쓰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인 비트윈 데이즈(In between days)’ ‘클로즈 투 미(Close to me)’ ‘저스트 라이크 헤븐(Just like heaven)’등으로 미국에서까지 인기를 누렸다. 미국 록밴드 레드핫칠리페퍼스 전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나바로가 로버트 스미스를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꼽았을 정도. 1991년에는 영국 브릿 어워드에서 최우수 영국 그룹상을 받기도 했다.

▶공연 트위터 : ‘큐어 공연 때 맨 앞 펜스 잡고 봤다. 세시간동안 꿈만 같았다’(티티마 출신 소이)

▶또 다른 숨겨진 1cm: ‘모두 웃어요.’ 큐어와 같은 날 앞서 공연한 미국밴드 폴리포닉스프리 멤버가 직접 한글로 적은 문구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흰색 천을 가로로 펼쳐 스프레이로 뿌려 단어를 적었다. 비치보이스를 연상케 하는 듯 경쾌한 음악이 특징인 그들다운 팬서비스다. 폴리포닉스프리는 이날 ‘홀드 미 나우(Hold me now)’, ‘라이트 앤 데이(Light & day)’ 등을 불렀다. 마지막 곡으로는 너바나의 ‘리듐(Lithium)’을 부르다 직접 무대 아래로 몸을 던져 관객들의 머리 위로 파도타기(관객들이 머리 위로 사람을 이동시키는 행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까칠한’ 현미경: 편의시설이 아쉬웠다. 빅톱스테이지와 서브 무대인 그린 스테이지를 잇는 공간에 배치된 남자 화장실이 세 개에 불과했다. 27일 하루 동안 현장을 찾은 관객 수는 3만 2000여 명. 이날 현장을 찾은 회사원 유환민(36) 씨는 “남자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공연장 입구를 안내하는 표지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길을 찾는데 불편했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