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를 사랑한 남자, 윤요섭이 만든 반전
by정철우 기자
2013.07.17 11:40:25
| LG 포수 윤요섭(왼쪽)이 경기 중 주키치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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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모두가 새로운 시즌에 대한 희망을 안고 구슬땀을 흘리는 스프링캠프. 그러나 LG 포수 윤요섭에겐 고민의 시간이었다. ‘이젠 포수를 그만둬야 하나?’ 그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윤요섭에게 타격에 보다 집중하라고 조언했었다. 그의 지난해 타율은 2할9푼8리. 7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타자로서 보다 집중하며 홈런 등 장타력을 끌어올린다면 훨씬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 LG엔 당시만 해도 눈에 띄는 우타 거포가 없었다.
반면 포수로서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현재윤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는 건 윤요섭에게 그만큼 기회가 가지 않을 것임을 뜻했다. 잘해야 3~4번째 포수 정도가 그의 자리처럼 여겨졌다.
포수는 수비에 대한 부담이 큰 보직. 타격을 위해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은 자리다. 때문에 주변의 조언에는 더 무게가 실렸다.
일단 포수로 또 한번 승부를 걸어보기로 결정한 뒤 시즌을 시작했지만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았다. 타격이 너무 부진했던 탓이다. 5월까지 윤요섭이 친 안타는 고작 2개에 불과했다. 현재윤의 부상으로 포수 출장 기회는 조금 늘어났지만 영 안타가 나오지 않았다. 갈등은 점차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포수도, (지명)타자도 모두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포수’였다. 그저 야구와 포수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생면부지의 김성근 당시 SK 감독을 찾아가 야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던 그다. 또 한번 벽에 부딪혔다해서 좌절하기엔 그 동안의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포기하기엔 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너무 컸다. 윤요섭은 “포수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끝내면 내가 뭔가 했다는 기분이 든다. 나의 힘으로 경기를 풀어갔다는 그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윤요섭은 리즈가 시즌 초반 주춤하자, 직접 불펜에서 볼을 받아준 뒤 “좋은 슬러브가 있는데 여기에 커브 등 이것 저것 너무 던지려다 오히려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진단을 해준 바 있다. 이후 리즈는 한층 나아진 구위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윤요섭에게는 포수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 인생이 그렇 듯, 야구도 바로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 포수에 대한 윤요섭의 열정은 현재 LG가 상위권의 치열한 싸움을 버텨내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현재윤과 최경철이 잇달아 부상으로 빠진 상황. 윤요섭이 아니었다면 2년차 조윤준에게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 뻔 했다.
김기태 LG 감독은 “윤요섭의 수비에 만족한다. 그의 타격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윤요섭을 아끼고 있다.
윤요섭이 주전 마스크를 쓴 뒤, LG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16일 사직 롯데전서도 승리하며 전반기 2위를 확정했다. 최근들어 가장 좋은 페이스로 전반기를 마치게 된 것이다.
그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현재로서는 현재윤이 언제쯤 복귀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상황. 윤요섭의 ‘포수 인생’은 어쩌면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