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부상도 막지 못한 당구 열정'...사이그너, 환갑에 맞이한 전성기

by이석무 기자
2025.03.18 14:03:45

[제주=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나이도, 부상도 ‘미스터 매직’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환갑의 나이는 오히려 관록과 경험이 됐고, 최근 입은 발가락 골절은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 쓰는 계기가 됐다.

환갑의 나이에 2025 PBA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세미 사이그너. 사진=PBA 사무국
세미 사이그너. 사진=PBA 사무국
2025년 프로당구 PBA(남자부) 월드챔피언십 우승 상금 2억원의 주인은 튀르키예 출신의 ‘백전노장’ 세미 사이그너(웰컴저축은행)다.

사이그너는 지난 17일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PBA 월드챔피언십 2025’ 결승전에서 같은 튀르키예의 륏피 체네트(하이원리조트)를 세트스코어 4-1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PBA에 진출하자마자 2023~24시즌 1차 대회(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던 사이그너는 637일 만에 개인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월드챔피언십은 첫 우승이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역대 PBA 월드챔피언십을 제패한 네 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이번 결승전에서 사이그너가 기록한 애버리지는 2.259로 역대 월드챔피언십 결승전 최고기록이었다. 그만큼 사이그너의 기량은 챔피언으로서 전혀 손색없었다. 1세트를 제외하고 2~5세트 내내 상대인 체네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미스터 매직’이라는 PBA 출범 이전부터 유명했던 사이그너는 1964년생으로 만 60세다. 우리 식으로 환갑이다. 물론 PBA에는 사이그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우승자 가운데는 최고령 선수다. 첫 우승 당시 본인이 세운 최고령 기록을 이번에 다시 갈아치웠다.

우승 인터뷰에서 나이에 대해 묻자 사이그너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며 “나와 경쟁하는 선수는 대부분 한참이나 어리지만 대신 난 경험이 많다. 이기고 싶은 갈망은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강한 체력을 요구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이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긴 하다. 하지만 60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정상급 실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PBA처럼 쟁쟁한 선수들이 모두 모인 수준높은 리그에선 더욱 그렇다.

사이그너가 그럼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고 우승을 차지하는 원동력은 철저한 자기 관리다. 그의 몸일 보면 탄탄한 근육질이다. 군살은 찾아볼 수 없다. 경기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매일 최소 2만보 가까이 걷는 것이 그의 루틴이다. 웨이트트레이닝와 철저한 식단 관리도 빼놓지 않는다.



“당구가 멘탈스포츠라고?”라고 반문한 사이그너는 “당구선수도 강인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큐를 잡고 공을 치는 자세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려면 하체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힘조절’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선 상당한 근력이 요구된다. 사이그너가 체력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근육양이 점점 빠진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더 많이 운동을 해야 한다. 체력이 없다면 당구를 잘 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이그너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시련을 겪었다. 튀르키예 집에서 요리를 하던 도중 무거운 냄비가 발가락 위로 떨어졌다. 발가락 골절을 당해 한 달 동안 침대에만 누워 생활했다. 당연히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이그너는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그는 “계속 누워서 생활하다 보니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하지만 대신 멘탈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전혀 좌절하거나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낯선 한국 생활도 그런 긍정적 마인드로 잘 넘겼다. 사이그너는 “외국인선수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한국이 안좋아서가 아니라 집을 떠나 오랜 여행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 때문이다”며 “튀르키예와 한국을 왔다갔다하는 생활이 살짝 지루하기도 했고, 인생을 즐기는 법, 당구를 즐기는 법을 살쩍 까먹기도 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사이그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이 경험의 힘이었다. 그는 “심리적인 부분을 바꾸기 위해 아내 및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이 순간을 즐기고 쟁취하기 위해 연습시간도 더 늘리고 마인드 컨트롤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사이그너는 자신의 전성기가 이제부터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난 젊고 지금이 전성기다. 더 젊어보이려고 모발 이식 수술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떤 뒤 “아무도 내가 공백기를 깨고 우승할 것이라 생각 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다운이 있으면 업도 있다. 지금부터 내 인생의 업이 시작됐다”고 큰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