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스몰볼? 'NO, 토털 베이스볼'

by정철우 기자
2009.03.16 15:54:07

▲ 멕시코전 추격의 솔로포를 친 이범호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한국은 스몰볼에 강점을 갖고 있는 팀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1조 1차전이 열리기 전 멕시코 비니 카스티야 감독을 비롯한 주요 선수들이 똑같이 반복했던 말이다. 파워 보다는 조직력에 의존한 동양야구 스타일이라고만 한국야구를 평가한 것이다.

연구 부족이었다. "고참 선수는 변화구는 잘 치지만 직구에 약하다"와 같은 넓은 의미의 편견에 불과했다. 한국 야구는 그들이, 아니 비단 멕시코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가 생각하는 야구의 틀에 갇혀 있지 않았다.

힘이 필요하면 힘을 쓰고 기술이 필요하면 기술을 쓸 수 있는, 아직 좀 거칠긴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플레이를 해내는 '토털 베이스볼'이 우리 야구의 진짜 색깔이었다.

한국은 초반 4점 중 3점을 홈런 3방으로 뽑아냈다. 투수 친화적 구장으로 유명한 펫코 파크에서 파워 한국의 위용을 뽐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점수는 바로 발에서 나왔다.

2회말 이범호의 솔로 홈런으로 1-2로 추격한 한국은 이용규가 좌전 안타로 출루하며 다시 기회를 만들었다.

멕시코 선발 페레즈는 눈에 띄게 흔들렸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이용규의 발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다음 타자 박경완 타석때 무려 6개의 견제를 했다. 연속 견제구도 당연하다는 듯 던졌다.

그러나 이용규는 움츠러 들지 않았다.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려하면 재빨리 2루로 뛰는 시늉을 했다. 그냥 뛰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속이라도 편했겠지만 끊임없이 뛰다 서다만 반복했다.

페레즈는 투구 템포가 빠른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구간 호흡이 짧아 야수들에게 힘이 된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을 상대로는 달랐다. 계속된 견제로 스스로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투수의 불안감은 야수들에게 빠르게 전염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투수 코치들이 투구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라고 주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레즈는 박경완을 삼진으로 잡았다. 그러나 결국 이용규에게 도루를 허용했다. 이용규는 포수가 잠시 공을 더듬는 틈을 놓치지 않고 기어코 2루를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레즈는 침착하게 박기혁을 2루 땅볼로 유도했다. 계속 견제를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는데는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야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는 실패했다. 2루수 E.곤잘레스가 이 공을 악송구, 1루수 뒤로 빠트렸기 때문이다.

그 단초는 페레즈가 제공한 것이지만 이용규의 빠른 발이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국 야구의 전략적 움직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득점에는 실패했지만 4-2로 앞선 6회 무사 1루서 이범호는 버스터(가장 번트후 강공)를 성공시켰다.

번트를 확신한 3루수 칸투의 극단적 전진수비를 활용한 공격이었다. 이범호는 홈으로 쇄도하는 칸투쪽으로 완벽한 땅볼 타구를 만들어내며 벤치의 전술에 100% 부응했다.

7회 고영민과 이진영의 더블 스틸로 멕시코의 마지막 혼마저 빼놓은 뒤 4번 김태균이 해결하는 장면은 '한국형 토털 베이스볼'의 완성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