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뚝심으로 한국 축구 바꾼 벤투, 그래서 더 아쉬운 작별

by이석무 기자
2022.12.06 07:27:30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974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 축구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하=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기적의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 축구 대표팀과 작별한다.

벤투 감독과 한국 축구의 동행은 4년 4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벤투 감독은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로 한국과 맞섰던 주인공이었다.

벤투 감독는 포르투갈이 한국전에서 0-1로 패한 뒤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고 2004년 스포르팅CP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친정팀 스포르팅CP에서 유스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벤투 감독은 스포르팅CP, 포르투갈 대표팀, 크루제이루, 올림피아코스, 충칭 리판 등 사령탑을 거쳐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다.

벤투 감독 본인 조차 “나를 은퇴시킨 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설 줄은 몰랐다”고 인터뷰에서 밝힐 만큼 기이한 우연이었다.

벤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지휘봉을 잡은 뒤 뚝심있게 자신의 스타일을 밀고 갔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기술보다 체력과 정신력에 의존했다. 아시아 무대에선 그런 축구가 통했지만 세계 무대에선 어림없었다. 세계적인 강팀과 만날 때마다 90분 내내 수세에 몰리고 고전하는 흐름이 반복됐다.

벤투는 달랐다. 수비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앞에서 먼저 압박했다. 공격은 무의미한 롱패스나 개인기 대신 약속된 패스 플레이로 상대를 흔들었다. 이른바 ‘빌드업 축구’였다.

벤투 감독이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월드컵 본선까지 팀을 이끌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전까지 대표팀 감독 가운데 4년을 맡아 월드컵 본선까지 책임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 아시아 지역예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성적 부진 등 여러 이유로 감독이 교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래서 대표팀 사령탑은 ‘독이 든 성배’라고 불렸다. 1948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처음 축구 대표팀이 구성된 뒤 무려 80번이나 감독이 바뀌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감독의 무덤’에서 살아남았다. 직전 월드컵 이후 팀을 맡아 4년을 버텨내고 다음 월드컵 본선까지 책임진 최초 감독이 됐다.

물론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다보니 특정 선수 기용과 관련해 팬들의 반발을 샀다. 빌드업 축구가 대표팀에 완전히 뿌리내리기 전까지는 경기력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경기를 주도하는 벤투 감독 스타일 축구가 통할 것인가 의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이 옳았음을 몸소 증명했다.

월드컵 진출에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 등 축구 강국과 맞서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단순히 운이 좋아 이기거나 비기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해온 축구로 당당히 싸웠고 16강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벤투 감독은 8강 진출이라는 또 한 번의 기적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가장 성공한 대표팀 감독으로 남게 됐다.

비록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벤투 감독과는 작별하게 됐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4년 4개월 동안 구축한 시스템은 한국 축구에 중요한 자산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