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을 향해 뛴다]박용택의 '오해와 편견의 껍질을 깨는 법'

by정철우 기자
2009.09.07 13:47:52

▲ 사진=LG 트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 야구전문기자] 지난해까지 박용택(30.LG)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잘생겼다"였다. 그 다음은 "야구도 제법 하는 선수"정도 였다.

그러나 올시즌 박용택은 그 순서를 바꾸어 놓고 있다. 또 '제법'이라는 단어도 '빼어나게'로 고쳐냈다.

박용택은 오해받기 쉬운 선수다. 늘 수준급 성적을 내지만 그 이상은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잘 생겼다. 어렵지 않게 "고민 없이 쉽게 야구 하는 선수"라고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그런 고정관념은 보기 좋게 깨져버린다. 여전히 그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면 먼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해본다.


1. 박용택은 고민하지 않는 선수다.
박용택이 그동안 어떤 성적을 냈는지는 굳이 시간 내어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는 늘 2할8푼의 타율에 두자릿수 홈런,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을 터다.

그보다 좀 더 낫거나 모자란 시즌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는 늘 그랬다.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성적을 낸 적은 없었다.

모두들 "그것 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그러나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당연스럽게 "열심히 안하니 그 모양"이라는 수근거림이 뒤따랐다. 찬스에 약하다는 인상도 깊게 남았다.

정작 본인은 달랐다. "죽을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해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껍질을 깨고 날아오를 준비가 안됐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아무리 재능이 없고 타격 매커니즘이 안된 선수라도 타석에서 죽을 각오로 집중하면 2할5푼은 칠 수 있다고. 내가 그랬다. 아무 준비도 안돼있었다. 6년차까지는 정말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버틴 것이다. 절대 좋은 폼으로 친 것이 아니다. 스스로도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나랑 잘 맞는 투수를 만나면 칠 수 있었지만 좋은 투수를 상대로는 못쳤다. 며칠 반짝했다가 또 부진하고, 결국 그렇게 시즌이 끝나면 늘 그 성적이었다. 오히려 시즌 중 연습량은 올해가 가장 적다. 하지만 마음은 올해가 제일 편하다. 일단 칠 수 있는 자세가 됐기 때문이다."

2. 박용택은 게으른 선수다.
박용택은 빠르다. 여기에 파워도 지니고 있다. 스윙 스피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성적에는 아무도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박용택이 그 성적에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용택의 성적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박용택이었다. 끊임 없이 고민했고 끊임 없이 자기만의 것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증거는 한 시즌에도 몇번씩 바뀌었던 그의 타격폼에서 찾을 수 있다. 외다리 타법도 해보고 스탠스도 자주 변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늘 '박용택 새로운 폼으로 도전'이란 기사가 나왔다. 시즌 중에도 수시로 타격폼이 바뀌었다. 폼을 바꿀때마다 죽어라고 노력했다. 익숙해 지기 위해서였다. 바뀐 폼이 몸에 익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칠때도 불안했다. 나만의 무언가가 없었으니까. 완성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제대로 된 폼을 갖고 싶었다. 코치님들도 내게 욕심을 많이 내셨다. 1년이 멀다하고 타격 코치가 바뀌었고 그때마다 난 손대고 싶은 선수 1순위였다."

3. 박용택은 잘 노는 선수다.
박용택은 잘 생겼다. 모델 뺨치는 몸매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빼어난 패션 감각까지 지녔다.



이쯤되면 화려한 밤생활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야구가 잘 늘지 않았으니 모두의 의심(?)은 확신이 됐다. 하지만 박용택은 흔히 떠오르는 상상과는 다른 삶은 사는 선수다.

LG를 맡았던 대부분 지도자들은 그를 직접 보기 전엔 "박용택이 좀 더 노력하면..."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팀을 떠나고 난 뒤에는 늘 "박용택이 정말 열심히는 하는데.."라고 말을 바꾸곤 했다.

"난 포커도 칠 줄 모르고 일본 전지 훈련 가서 파친코도 안한다. 술은 훈련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마셔보지 않았다. 담배는 근처에도 안가봤다.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데 그런 유혹을 참지 못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걸 하고 싶은데 못해서 힘들어 본 기억은 없다."

그럼 그 많은 고민은 어떻게 이겨내는 것일까. 야구가 잘됐다면 모를까.. 그가 생각하는 2008년까지의 박용택은 실패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박용택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 옷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인텨뷰 시간 중 가장 밝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패션에 정말 관심이 많다. 옷 사러 나가서 사람 구경, 옷 구경하는 것이 정말 좋다.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진다. 옷사는데 지출 비용? 뭐...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좀 많을 거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자제하는 편이다. 나중에 잘 돼서 돈 많이 벌면.. 그땐 어떻게 참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하."


노력은 분명히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타격에 정답은 없지만 수없이 많은 시도와 그에 따른 엄청난 양의 훈련이 있었다면 좀 더 빠른 결과물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박용택은 김용달 황병일 등 국내 정상급 타격 지도자들의 사사를 받은 제자가 아닌가.

박용택은 "어쩌면 딱 3할 정도를 치는 타자가 목표였다면 그 전에도 가능했을런지 모른다. 이순철 감독님은 내게 늘 "뭘 그렇게 고민하냐. 고민만 줄이면 당장이라도 3할은 칠 수 있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늘 3할3푼3리 이상은 치는 타자가 되고 싶었다. 반은 농담이지만 모든 타격 타이틀을 한번씩은 따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러려면 뭔가 다른,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박용택은 고민이 많은 선수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그렇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도권에서 열리는 모든 LG 경기는 직접 관람을 한다. 박용택이 잘 치는 날이면 그날 입은 옷은 곧바로 빨게 한다. 속옷과 양말까지 전부. 다음날 경기에도 그대로 입고 가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빠르고 파워도 있고 유연성도 좋은 선수니까 당연히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난 고민하지 않고는 이겨낼 수 없는 선수다. 정말 중요한 건 기본적인 자세다. 그걸 꼭 찾고 싶었다."


2009년의 박용택은 이전의 박용택과 다른 선수다. 성적이 말해주 듯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타격 머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저 오랜 고민의 끝에서 우연히 찾아온 깨달음이 있었다고만 말했다.

"지난해 후반기 쯤 도저히 더 이상은 이렇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 즈음부터 다른 선수들이 야구하는 걸 열심히 보게 됐다. 올 시즌 초 갈비뼈 부상 탓에 경기에 나서지 못했을 때도 대부분의 시간을 야구 보는데 썼다.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잘 치는 선수들은 어떻게 치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내가 잘 쳤을 때만 편집된 비디오도 열심히 봤다. 정말 늘 타격폼이 달랐다. 그런데 똑같은 것이 한가지 있었다. 끝까지 두 손으로 배트를 잡고 있는 날 볼 수 있었다. 팔로 스로도 거의 없이 팔목을 잘 쓰고 있더라. 진짜 내 폼에 대한 개념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요점은 '편하고 간결하게'였다. 특별한 노림수 없이도 공 보고 공 치기를 할 수 있는, 정말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준비였다. 그는 김현수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다.

"준비 자세나 중심 이동 같은 건 (이)택근이한테 많이 물어봤다. 다른 사람이라면 창피했겠지만 택근이한테는 편하게 물을 수 있었다. 택근이 만큼은 아니지만 준비할때 방망이를 많이 눕히고 약간 오픈 스탠스로 서는 것 등이 택근이 영향이다. 비디오를 제일 열심히 본 선수는 김현수다. TV를 보며 현수처럼 서서 현수처럼 치는 걸 많이 따라해봤다. 참 방망이를 편하게 들고 쉽게 나오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타지니나 현수가 늘 "모든 타이밍은 직구에 맞춰놓고 변화구에 대응한다"고 하는데 그건 간결한 타격폼으로 시간을 벌기 때문이란 걸 느끼게 됐다. 김용달 코치님이 늘 "타격폼은 투수의 타이밍과 동일시돼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지금의 간결하고 편한 타격폼을 갖추게 되며 그게 가능해졌다. 스트라이크 존을 (전-중-후)3단계로 나눠보는 것도 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