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한증, 처음과 끝을 함께 한 허정무 감독

by송지훈 기자
2010.02.12 08:16:59

▲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도쿄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그동안 공한증(恐韓症)이라는 표현에 대해 선수들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그런 면에서는 (중국전 패배가) 독보다 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중국전 완패로 인해 여론의 융단폭격을 맞은 다음날, 한국기자들과의 약식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허정무 감독의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침울해보였다.

일본과 홍콩의 동아시아대회가 열린 1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허 감독은 "비판받을 건 받고, 못한 건 인정하겠다"며 중국전 완패를 시인한 뒤 "이번 패배가 나와 선수들에게 좋은 교훈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전에는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은 경기였다"면서 "우리가 흐름을 주도하면서도 역습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고, 지나치게 슈팅을 아낀 것이 패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일부러 져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중국전 패배는) 한 번 쯤은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는 말도 했다.

중국에게 0-3으로 무너지며 한국은 무려 32년 간 이어져 온 대 중국전 무패 기록을 마감했다. 역대전적 또한 16승11무의 기존 전적에 1패를 더해 첫 패배의 쓰라린 기록을 아로새겼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을 만나기만 하면 제 졸전을 거듭한다는 의미로 중국인들이 만들어 붙인 '공한증'이라는 용어의 출발점에 허정무 현 한국대표팀 감독이 있었다는 점이다.

허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우리가 공한증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 왔는데, 중국전 무패행진이 시작된 시점이 바로 내가 대표팀 멤버로 뛰던 시절이었다"고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중국이 공산화 된 이후 A매치 교류를 갖지 않던 한국이 빗장을 풀고 처음 맞대결을 펼친 건 1978년 12월17일,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경기를 통해서였다. 당시 중국대표팀과 최초로 마주한 한국은 차범근 현 수원삼성 감독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하며 위대한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허 감독은 "당시 차범근 선수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것이 바로 나였다"며 지난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그 다음 경기에서는 차 감독이 독일 무대에 진출하느라 국가대표팀에서 빠져 출전하지 못했고, 내가 골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선수 허정무'는 아시안컵 1차예선을 통해 열린 중국과의 리턴매치에 출장해 결승골을 터뜨리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첫 맞대결이 열린지 12일 만인 1978년 12월29일의 일이었다. 만나자마자 치른 2연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며 기선제압에 성공한 한국은 이후 무패행진을 거듭하며 중국에 대해 '꿩 잡는 매'로 군림했다.

그리고 32년 뒤, 공한증의 출발점에 서 있던 '선수' 허정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감독'으로 보직을 바꿔 공한증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이 됐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매듭을 묶은 사람이 그것을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축구사에 '공한증'이라는 돋보이는 매듭을 묶었던 허 감독은 "월드컵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 중국전 무패 여부에 연연할 수 없었다"며 그것을 스스로 풀어버렸다. 말과 표정은 덤덤했지만, 감독 자신 또한 뒷맛은 결코 개운치 못했을 것이다.

▲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