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한국사랑' 키워갈 기회 박탈한 2PM 재범 청문회

by김은구 기자
2009.09.14 16:41:17

▲ 재범


[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2PM 재범이 팀을 탈퇴한 직후 자신이 나고 자랐던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8일 떠났으니 벌써 6일이 지난 셈이다.

한국에 와서 연습생 생활을 거쳐 2PM으로 데뷔, 이제 막 빛을 보기까지 고생한 게 4년. 그러나 한순간 재범은 궁지에 몰렸고 이후 불과 4일 만에 그동안 쌓아올린 노력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팬들은 재범의 2PM 탈퇴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그가 노력의 결실을 언제 다시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그 과정이 마치 정치권에서 장관 등을 임명할 때 진행되는 청문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임 장관 내정자가 국회의원들 앞에 선서를 한 뒤 도덕성 및 자질(장관 수행 능력)에 관해 엄청난 질문 공세를 받는다. 장관 내정자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국회의원들의 질책을 반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거나 상처투성이가 된 채 청문회를 가까스로 통과한다. 
 
2PM 리더 재범은 네티즌들의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스스로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선택을 했다. 

이번 파문은 지난 2005년과 2007년 미국 내 네트워킹 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 재범이 올린 글이 원인이 됐다. 1987년생인 재범은 지난 2005년 18세, 2007년 20세였다. 그리고 모국이지만 낯선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시기였고 꿈을 좇으며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재범은 마이스페이스에 친구에게 보내듯 남긴 글에서 'Korea is gay', 'I hate Korean', 'Korea is whack' 등의 표현을 썼다. 이 문장들은 '한국이 역겹다', '한국인들 짜증나', '한국은 이상해' 등으로 해석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네티즌의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미국 문화와 현지에서 통용되는 단어의 의미를 감안하지 않고 사전적 의미로만 직역한 것"이라며 "실제로는 재범의 표현이 그렇게 과격하지 않은 것이었다"며 그를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범은 변명을 하거나 글 내용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단지 '2005년 1월 고교생 때 처음 와서 살다보니 말도 안통하고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철없이 감정적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는 내용과 함께 '너무 죄송하고 창피하다'는 글로 사과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몰리듯 기약 없이 팬들 곁을 떠났다.



사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방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은 나라 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반론을 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재범은 별반 다를 게 없는 경우였는 데도 정말 어렵게 올라간 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과거에도 한순간 잘못이나 판단 실수 때문에 나락까지 떨어진 연예인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승준이다.

유승준은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앞두고 공연을 목적으로 출국했다가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 법적으로 병역의무에서 벗어난 뒤 비난에 시달렸고, 법무부로부터 입국금지조치를 받았다. 이후 유승준은 자신의 인기 기반이 있었던 한국에서는 가수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남자 연예인들에게 군대는 특별한 면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누구나 다녀와야 하는 의무가 됐다. 그런데 병역의 의무는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의무다. 특별히 연예인에게만 엄중한 잣대가 적용되는 게 아니라 불법적으로 면제를 받으려다 적발되면 누구나 처벌을 받는다. 유승준의 경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법규정의 틈을 이용해 '탈법 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돼 입국금지조치가 내려졌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음주운전, 성매매, 마약복용, 상습도박 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 역시 법적인 문제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범의 경우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정말 힘든 상황, 어린 시절의 치기로 투덜대듯 올린 글 때문에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티스트가 쫓겨나듯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는 법적인 문제도, 도덕적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단지 '철없는 청소년의 투정'에 가깝다. 연예인이 되지 않았으면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일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크게 부각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반성하고,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서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재범은 그 시기에 연예인이 되려고 강한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제대로 반성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끼적거린 문장들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다가 결국 '힘든 자리'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네티즌들은 연예인들에게 너무나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도덕적 잣대는 재범이 한국에 더 익숙해지고 한국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기회마저 박탈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