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끝 좋은 투수'는 인내를 통해 만들어진다

by정철우 기자
2014.10.02 14:05:11

윤성환. 사진=삼성 라이온즈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야구 중계를 듣다보면 흔히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볼 끝’이다. ‘종속’이라는 잘못된 표현으로도 쓰이는데 ‘스피드 건에 잡히지 않는 묵직한(혹은 지저분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뜻한다는 점에선 같다.

과학으로는 증명이 어렵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빠른(빠르기만 한) 공은 칠 수 있어도 볼 끝이 좋은 공은 공략이 어렵다.”

한국 투수 중엔 삼성 윤성환이 대표적인 예로 자주 등장한다. 140km를 겨우 넘기는 스피드지만 그의 직구는 좀처럼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올 시즌 잠시 슬럼프를 겪으며 장타를 많이 허용하기도 했지만 이내 제 페이스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날카로운 제구력과 함께 볼 끝이 비결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스피드는 타고나야 하는 것인 반면 볼 끝은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한국엔 윤성환 같은 유형의 투수가 많지 않다. 스피드를 선호하는 분위기 탓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볼 끝이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엔 볼 빠른 투수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요즘은 150㎞를 훌쩍 넘기는 투수들도 아주 많아졌다. 하지만 빠르기 하나 만으로 성공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제구력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볼 끝이 약한 것도 매우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맘 먹고 힘 껏 던진 빠른 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 멀리까지 나가버리는데 제구 잡으라며 “자신감 가지고 한 가운데로 던지면 못 친다”고 가르친다고 자신감이 생길리 만무하지 않은가.

반면 일본엔 스피드에 의존하지 않는 유형의 투수가 많다. 일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서 성공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이 때문으로 꼽힌다. 스피드만으로 메이저리그를 놀라게 할 정도의 투수는 없었지만 그 이상의 볼 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떻게 볼 끝 좋은 투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주니치 드래곤즈서 연수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LG에서 코치를 역임했고 다시 주니치에서 코치로 올 시즌을 보낸 서용빈 코치가 보고 배우고 가르친 것을 통해 그 비결의 한 자락을 살펴 보고자 한다.

한국엔 볼 빠른 투수들이 많다. 그 사이에서 경쟁을 하다보니 다들 빠르게 던지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럽게 힘만 잔뜩 들어가 던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릴리스 포인트는 자동으로 뒤에 형성된다.

오승환 처럼 스피드와 볼 끝을 겸비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런 완벽한 조건을 갖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은 반대였다. 어떻게든 최대한 공을 앞으로 끌고 나와 던지기 위해 애쓴다. 그러려면 팔꿈치가 먼저 앞으로 나와줘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교육이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으로 이뤄진다. 일본 투수들은 팔꿈치 부상 비율이 높고 한국은 어깨 부상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우선 일본은 처음 야구를 배우는 시기부터 볼 끝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가르치고 있다. 빠르게 던지는 것 보다 정확하게 힘을 실어 던져야 한다는 걸 기본적으로 배운다고 한다.



이와세 등 주니치의 주축 투수들은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을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1.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가져가는 노력과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2.근력 위주의 훈련 보다는 유연성을 키우는 트레이닝에 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다.

3.스피드를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릴리스 포인트만을 생각하며 짧은 네트 스로우(네트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 훈련을 많이 한다.

나는 야수였지만 캐치볼에 많은 공을 들여 훈련했다. 캐치볼을 그저 경기 준비 과정에서 몸을 풀기 위해 하는 것과 경기를 잘 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투수들도 바로 이 캐치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올해 주니치에 입단한 오가타라는 유망주 투수가 있다. 매우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라는 점에서 관심을 많이 끌었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일본 투수들과 달리 캐치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즌 개막 후 얼마 되지 않아 2군으로 내려왔다. 1군 스태프의 훈련 지시 내용은 단 한 가지였다. “캐치볼 부터 다시 훈련 시킬 것.”

50세 나이에 승리투수가 된 야마모토 마사나 40대에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와세는 절대 캐치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자신의 볼 끝을 살리게 해 줄 시작이라고 여긴다.

야마모토는 캐치볼을 통해 밸런스, 볼의 회전, 릴리스 포인트,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살핀다고 했다. 좋은 밸런스에서 공이 던져지며 최대한 앞으로 끌고가 공을 놓고 있는지, 또 볼이 상대에게 가는 동안 회전은 잘 먹고 있는지 꼼꼼히 체크하며 캐치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실전에서 스피드 건이 증명할 수 없는 묵직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릴리스 포인트는 팔꿈치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캐치볼을 통해 이 자세를 꾸준히 체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볼 끝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떻게 좋아지는지에 대해 투수들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타자들은 느낀다. 공이 느려도 치기 힘든 투수들이 분명히 있다. 만만히 생각하고 제대로 쳤다고 생각했는데 먹힌 타구가 나오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타자들은 그런 투수들을 더 까다롭게 생각한다.

반대로 쓸데 없는 힘만 들여 빠르게만 공을 던지는 투수들은 오히려 타자들에게 얕보이기 십상이다.

어쩌면 야마모토나 이와세의 방법이 너무 기본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기본을 잊지 않고 진짜 내 것을 만드는 일은 매우 고단하고 외로운 일이다. 반대로 안 지켜도 바로 티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인생이라는 긴 승부에서 어떤 선택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