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블로그]류현진, ML엔 비상구가 없다
by정철우 기자
2012.11.19 14:06:16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괴물’ 류현진이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직행 선수라는 새로운 역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LA 다저스가 무려 2573만 달러라는 대형 포스팅 금액을 제시했고, 한달간 단독 협상을 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지만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는 류현진의 의지를 감안했을 때, 계약까지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모든 것이 장밋빛이다. 협상을 잘 마무리하고 나면 류현진은 선수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메이저리그의 중심에 서게 된다. 또한 적지 않은 몸값을 받게 된 만큼 류현진에 대한 대우는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류현진의 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서 당당하게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제 류현진은 팀의 에이스가 아니다. 처음 데뷔를 앞두고 있는 신인이다. 이는 곧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한화의 아니 대한민국의 에이스로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한 적과 싸워야 함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알아서 필요한 만큼만 훈련하고, 승.패 보다는 야구를 즐기는 곳. 우리가 겉으로 보고 느끼게 되는 메이저리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엔 치열한 경쟁과 승부의 세계가 숨어 있다. 언제든 다른 선수로 대체될 수 있을 만큼 두터운 선수층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숨 막힐 것 같은 공포를 안겨준다. 메이저리그 선수 대부분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이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류현진 보다 앞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성공했던 아시아권 선배들의 경험담에서도 그 무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아시아계 선수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둔 이치로는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압박감을 짊어지고 가자. 도망치면서 이길 수 있는 곳은 아시아에서 뿐이다. 미국에서 그렇게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야구는 멘털 게임이다. 또한 길고 긴 페넌트레이스에서 늘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야구를 할 수는 없다. 때문에 한번씩은 야구가 안 풀릴 때도 있고,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이럴 때 만만한 상대(상대 팀 타자 중 몇몇이어도 좋고, 상대팀 전체라면 더 좋다)를 만나면 반전의 기회가 된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계기는 슬럼프 탈출의 가장 좋은 약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한국 프로야구에선 이런 기회를 종종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다소 엉성하고 허술해 보일 수 있었도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홈런을 칠 수 있는 한방 능력을 지닌 선수들로 채워져 있다. 힘만 센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짧고 간결한 스윙으로 정교함까지 장착하고 있다.
보스턴에서 활약한 바 있는 좌완 투수 오카지마는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대결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일본에서 뛸 때는 마쓰이와 용병 정도 신경쓰면 됐다. 일단 그 선수들에게 큰 걸 맞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와 보니 모두 용병타자에 마쓰이까지 있는 셈이었다. 피해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류현진은 시작부터 에이스였다. 팀은 모두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미묘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벽이 늘 그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20년 가까이 용병으로 뛰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서 최고의 성과를 낸 경험을 갖고 있는 박찬호에게마저 풀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는 의미다.
‘국민 타자’ 이승엽도 “일본어가 익숙해지며 선수들과 대화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농담(우리로 치면 ”조용필은 마지막에 나오는 것“ 정도)으로 웃고 떠들 때 느껴지는 공허함,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런 기분이 들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쌓이게 된다”고 말했었다.
박찬호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어깨를 짖누를 땐 차를 몰고 바닷가를 찾곤 했다고 한다. 그 바닷가는 늘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고 한다.
보이지도 않는 바다 건너 고국의 땅을 상상 속으로만 그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곤 했을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의 화려함 보다 먼저 마음속에 그려봐야 하는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