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①]뱀파이어도 아니고 왜 좀비였을까

by박미애 기자
2016.07.20 08:44:29

‘부산행’ 스틸
[이데일리 스타in 박미애 기자]극장가 여름 격돌이 시작된다. 20일 개봉하는 ‘부산행’을 시작으로 27일 ‘인천상륙작전’ 8월10일 ‘덕혜옹주’ ‘터널’ 메이저 배급사 4곳에서 100억원씩 들인 대작 4편이 극장가를 접수한다.

시작은 ‘부산행’이다. 지난 5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돼 “역대 최고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다. ‘부산행’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 영화계 이름난 연출자로 라이브액션무비, 실사영화는 처음이다. 첫 실사영화로 칸영화제 초청을 받고 대중성과 작품성까지 인정을 받았다. 칸의 주목은 국내로도 이어졌고 12일 언론·배급 시사회 후 올해 첫 천만영화로 점쳐지고 있다.(이하 내용에는 다소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부산행’은 본격 한국형 좀비무비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다. 영화 카피 속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좀비 바이러스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감염자가 속출하고 국가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시속 300km로 달리는 부산행 KTX에 탑승한 사람들이 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다. KTX와 좀비의 만남은 짜릿하고 속도감 있는 호러물로 완성됐다.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실사로 국내에서 통할까 싶은 좀비를 소재로 가져왔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에 더 끌린다. 그래서 좀비가 좋았다.”



감독의 말이다. 한참 뱀파이어, 늑대인간이 인기였다. 뱀파이어, 늑대인간은 인간이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지녀서 동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좀비 역시 공포의 대상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과 가깝다.

‘부산행’ 속 좀비는 군중과 다르지 않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도착하고 이동식 모바일로 업무를 처리하는 편리한 문명사회를 살고 있지만 여유가 있기는커녕 삶은 더 바쁘고 더 팍팍해졌다. 공포에 직면해 생과 사를 오가는 문턱에서 인간의 본성은 가차 없이 드러난다. 휴머니즘은 찾기 힘들다.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는 현대인을 닮아 있다. 그래서 감독은 “좀비에게 보통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면서 “한편으로는 좀비의 얼굴이 슬퍼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행’ 좀비는 움직임이 민첩하다. 감독이 ‘28일후’(2002) ‘새벽의 저주’(2004)에 영향을 받아서다. 영화에서 좀비로 분한 보조출연자들은 100여명. 좀비를 구현하는데 특수분장 감독 못지않게 안무가의 역할이 중요했다. 국내 정서에 어울리는 이미지와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감독은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좀비가 된 ‘결과’가 아닌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장면이 많은 이유다.

“봉준호 감독님이 ‘괴물’을 만들 때 ‘괴물이 한강에서 나타나야 하고 송강호와 같이 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더라. ‘부산행’의 좀비도 그렇게 출발했다. ‘부산행’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특수분장에 집착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작업했다.”
연상호 감독(사진=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