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건들의 몰락...한국 야구,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이유

by이석무 기자
2023.03.14 11:53:59

지난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 6회말 한국 투수 김윤식이 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 7회말 한국 투수 이의리가 경기가 풀리지 않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쿄=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세계 4강’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젊은 투수들의 동반 부진이다.

이번 대표팀 구성을 살펴보면 타자들의 평균연령은 31.3세로 높았지만 투수들의 평균 연령은 27.1세에 불과했다. 2000년생 이후 출생한 투수가 원태인(23·삼성), 김윤식(23·LG), 소형준(22·KT), 이의리(21·KIA) 등 4명이나 됐고 1999년생 투수도 곽빈(24), 정철원(24·이상 두산), 정우영(24·LG) 등 3명이었다. 지난 시즌 구원왕을 차지한 고우석(25·LG)은 1998년생이었다.

과거 김광현(SSG), 류현진(토론토)이 국제대회를 통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이들 젊은 투수들에게도 이번 WBC가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배짱 있게 외국 타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잔뜩 주눅이 들고 얼어붙었다. 자기 공을 던지기는커녕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 결과는 호주전 역전패와 일본전 대패로 나타났다.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에 합류한 투수는 15명, 이 가운데 목근육 통증으로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고우석을 제외하고 14명이 마운드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98년 이후 태어난 젊은 투수 가운데 3이닝 이상 공을 던진 선수는 원태인(4⅓이닝 5피안타 3실점)과 소형준(3⅓이닝 1피안타 2실점) 두 명뿐이다.

특히 차세대 좌완 에이스로 기대를 걸었던 구창모, 이의리, 김윤식의 성적은 처참했다. 3명이 합쳐 1⅔이닝을 던진 게 전부다. 피안타 3개에 볼넷을 5개나 헌납하며 5실점을 내줬다. 패기 넘치는 모습을 기대했던 기대주들이 오히려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 처참함까지 느끼게 하였다.

젊은 투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몰락한 것을 두고 무조건 실력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대표팀의 준비 상황이 너무 꼬인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지훈련지 기상 이변으로 투수들이 몸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환경임은 틀림없었다. 처음 만져본 공인구도 젊은 투수들에게는 낯설었다.

하지만 국가대표로서 몸을 만드는 것은 결국 본인 책임이다. 나이는 어려도 이미 KBO리그에선 각 팀 주축 선수들이다. 연봉도 수억 원대 고액을 받고 있다. 날씨가 안 좋아서, 공인구가 낯설어서 부진했다는 것은 결국 변명일 뿐이다.

‘투잡러’들이 모인 체코 야구대표팀의 에이스 마르틴 슈네이데르는 한국 투수들이 난타당했던 호주와 경기에 선발로 나와 5⅓이닝을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 1실점으로 막았다. 65개 투수수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5이닝을 넘기면서 선발투수로서 역할을 120% 해냈다. 체코 감독은 투혼을 발휘한 슈네이데르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슈네이데르는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다. 24시간을 근무하고 48시간 휴식을 취하는 업무 형태다 보니 자국리그 경기를 온전하게 소화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뒷마당에 그물을 쳐놓고 쉬는 날 공을 던지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마음가짐이다.

일부에선 투수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리그 환경을 문제 삼기도 한다. 흥미를 위해 더 많은 득점을 유도하다 보니 투수들의 수난이 이어졌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투수들이 성장할 토양 자체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KBO는 지난해 ‘정상화’라는 명목하에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 하지만 제구력이 부족한 투수들에게 스트라이크존 확대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도 시즌 중반 이후에는 스트라이크존이 다시 좁아지는 모습까지 나왔다.

투수들의 몰락은 학생야구부터 시작된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겠다며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줄이고 수업이 끝난 뒤 방과 후나 주말에만 훈련하니 좋은 선수가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 유소년 지도자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며 “선수들은 하체 강화 등 기본적인 체력 훈련조차 하지 못하고 경기를 치르는데 급급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지도자는 “투수 제구력은 성인이 돼 좋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어릴 때 공을 많이 던져 스스로 감을 깨우쳐야 하는데 훈련 시간 부족과 투구수 제한 규정 등에 막혀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프로야구팀들이 구속에만 너무 집착을 하다보니 어린 선수들도 제구보다는 구속을 끌어 올리는데만 신경 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미 문제점은 다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해결 의지다. 프로와 아마 모두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 야구가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도 학생 선수들을 규제하는데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